이코노미조선

[이코노미조선=신문섭 베인앤드컴퍼니 대표파트너] 2025년 말 미국 증시에서는 인공지능(AI)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낙관론과 투자 규모가 실제 가치보다 과도하다는 거품론이 맞붙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서는 이 국면이 한층 더 진화했다. AI가 지나치게강력해지면서 산업 전반을 뒤흔들 것이라는 이른바 ‘AI 파괴론’이 부상한 것이다. 도화선은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SaaS와 아포칼립스의 합성어)’였다.
주요 AI 업체가 기업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AI 에이전트를 잇달아 내놓자, 기업용 소프트웨어가 급속히 대체될 것이라는 공포가 시장을 덮쳤다. 소프트웨어 기업 주가가 급락한 것을 시작으로 금융, 부동산, 물류, 사이버 보안까지 거의 모든 업종으로 충격파가 확산했다. 일부 시장 분석 기관은 AI가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대규모로 대체하면서 소비 기반을 무너뜨리고 금융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극단적 시나리오를 내놓기도 했다.
시장 공포가 과장됐는지 여부를 떠나,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AI는 더 이상 기존 업무를 보조하는 생산성 도구가 아니라 기업이 일하는 방식 자체를 결정하는 운영체제(OS)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요 AI 제공 업체는 최근 수개월 사이 플랫폼을 생산성 보조 도구에서 능동적 기업 인프라로 일제히 재편했다. AI가 기존 소프트웨어에 덧붙이는 기능이 아니라 업무 수행 방식 그 자체의 운영체제가 되고 있다.
이 같은 전환기에 기업 경영진이 지금 당장 답해야 할 질문은 네 가지로 압축된다. ‘AI가 산업과 전략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인간과 AI 업무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 AI 에이전트를 어떤 방식으로 구축할 것인가 그리고 AI를 어떻게 기업 전체로 확장할 것인가’다.
1│AI가 산업과 전략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시대마다 경쟁 기반은 달라져 왔다. 1990~ 2000년대 정보화 시대에는 규모의 경제와 인프라 경쟁력이, 2005~2020년 플랫폼 시대에는 네트워크 효과와 플랫폼 기반으로 한 고객 록인(lock-in)이 승패를 갈랐다.
AI 시대 경쟁 우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학습 속도, 독점적 데이터와 지식, 신뢰 기반의 생태계 통제력이 새로운 경쟁력이 된다. 핵심 동력도 바뀌고 있다. 정보화 시대가 정보 비용을, 플랫폼 시대가 연결 비용을 낮췄다면, AI 시대는 ‘지능 비용’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다. 지능에 대한 보편적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더 작고 빠른 기업도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기업 규모가 비용 곡선과 경험 곡선상의 위치를 결정했다면, 이제는 AI 학습의 누적 기간과 속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AI 경험 곡선에 일찍 올라타는 것 자체가 비용·규모 우위를 구축할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뜻이다. AI 에이전트 배치를 통해 기업은 30~50% 생산성 향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이는 20세기의 글로벌화, 오프쇼어링(offshoring·생산 기지 해외 이전) 물결에 맞먹는 규모다.
아울러 고객 차별화 원천이 변하고 있다. AI가 초개인화와 빠른 혁신을 가능하게 하면서, 독점 데이터 구축과 업무 방식 통합 역량이 차별화의 핵심이 됐다. 소비자가 리테일, 금융, 여행 등에서 AI 에이전트를 통해 여정을 시작하면서 ‘고객을 누가 소유하느냐’ 는 질문이 새롭게 열리고 있다.
2│인간과 AI의 업무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
AI 전환은 기술 도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핵심은 업무 방식 재설계와 인력 현대화의 병행이다. 둘 중 하나만 추진하면 실행 역량이 없는 업무 흐름도가 나오거나, 구식 업무 방식에 갇힌 숙련 인력만 남게 된다. 오래된 공정에 AI를 적용한다 한들, 자동화된 오래된 공정일 뿐이다.
AI 전환은 네 가지 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는 준비 단계다. 변혁 범위와 속도에 대해 경영진이 합의하고 우선 적용할 업무를 선별하는 것이다. 2단계는 업무 방식 현대화다. 핵심 원칙은 ‘어제의 프로세스를 자동화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재발명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AI 역량과 6~12개월 후의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 파편화한 프로세스를 통합하고 단순화해야 한다. 3단계는 하이브리드 인력 준비다. 인간이 전적으로 감독하는 방식과 AI가 자율 실행하되 인간이 관리·감독하는 방식을 구분해 역할을 재배치해야 한다. 새로운 직무에 대한 리스킬링(reskilling)과 채용도 필요하다. 4단계는 변화 제도화다. 새로운 업무 방식을 관리 시스템에 내장하고, 인간과 AI 모두의 성과를 핵심성과지표(KPI)로 추적하며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AI 전환은 AI를 일자리 대체가 아닌 ‘업무 격상’으로 프레이밍하는 것이다. 직원을 반복 업무에서 해방시키고, AI 에이전트 주도 시스템의 감독자, 설계자, 개선자로 재배치하는 것이 핵심이다.
3│AI 에이전트를 어떤 방식으로 구축할 것인가
기존 정보기술(IT)팀 역량에 AI를 덧붙이는 수준으로는 기업 전반에 AI를 확장하기 어렵다. 따라서 AI 에이전트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시스템, 이른바 ‘에이전트 공장’이 필요하다.
에이전트 공장의 목표는 1세대 에이전트 개발에 든 시간의 절반으로 3세대 에이전트를 만들고, 10세대 에이전트부터는 구축 과정 자체를 표준화하는 것이다.
에이전트 공장 마련을 위해서는 기업이 AI 에이전트를 운용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해당 분야 전문가와 리더를 확보하고, 업무 단계, 의사 결정 구조, 예외 상황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AI 성능은 업무 방식을 얼마나 이해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AI가 무엇을 입력받고 무엇을 내놓을지, 어디까지 스스로 판단하는지 등을 분명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4│AI를 어떻게 기업 전체로 확장할 것인가
대부분 기업이 AI를 실험하고 있지만 확장에는 실패하고 있다. 실험과 실질적 성과를 가른 주요인은 접근 방식이다.
기업이 AI를 도입하는 방식은 여섯 가지로 나뉜다. △범용 AI를 넓게 배포해 팀 자율 혁신을 유도하는 ‘보텀업(bottom-up)’ △5~10개 핵심 영역에 집중하는 ‘톱다운(top-down)’ △검증된 AI 에이전트를 복제하는 ‘수평 확장’ △AI를 내장한 업무 방식을 새로 구축하는 ‘엔드투엔드(end-to-end)’ △소규모 팀이 중요한 활용 사례에 집중해 짧은 반복 개선 과정을 거치며 성능을 점진적으로 끌어올리는 ‘종적 확장’ △산업이 완전히 바뀔 위험이 있는 경우, 소규모 팀이 사업을 처음부터 재설계하는 ‘도약’이다.
무엇이 가장 적합한 접근 방식인지는 변화의 긴급성과 필요한 AI 에이전트 정교함에 따라 달라진다. 안정적인 산업군에 속한 기업은 점진적 접근이 가능하지만, 근본적 파괴에 직면한 기업은 과감하고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어떤 도입 방식을 선택하든, 몇 가지 기본 투자는 필수적이다. AI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핵심 데이터와 지식을 체계화하고, 주요 비즈니스 시스템에 AI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며, 보안 및 거버넌스(governance·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다.
AI는 기술 프로그램이 아니라 업무 방식과 경쟁 방식 재설계다. AI 전략의 성패는 계획이 아니라 실행에 달려 있다. 미국 증시를 뒤흔든 AI 파괴론이 현실이 될지는 결국 각 기업이 이 네 가지 질문에 얼마나 빠르고 체계적으로 답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