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이코노미조선=신문섭 베인앤드컴퍼니 대표파트너] 테크 업계에서 ‘황금알 낳는 거위’로 불려 온 SaaS(Software as a Service·서비스형 소프트웨어)가 생성 AI(Generative AI), 더 정확히는 ‘에이전트 AI’ 앞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2월 초 미국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이 생성 AI ‘클로드 코워크’에 법무 업무 기능을 플러그인으로 출시하자, 미국과 유럽 증시에서 법률 서비스, 데이터 분석, 고객 정보 관리 소프트웨어 및 SaaS 관련 주요 기업 주가가 일제히 급락하는 등 업계가 큰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SaaS는 지난 25년간 업데이트 주기를 단축하고 기능을 빠르게 쌓으며 기업 정보기술(IT)의 표준이 됐다. 그런데 이제 AI가 특정 기능을 넘어서 특정 업무를 통째로 실행하기 시작하면서, 사용자가 클릭하던 화면과 계정 기반 과금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변화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다. 기초 모델 비용이 급락하는 가운데 3년 안에 규칙 기반 디지털 업무가 ‘사람+앱’에서 ‘AI 에이전트+API(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SaaS 기업이 느끼는 위기의 본질은 ‘기능 경쟁’이 아니다. AI가 사용자 업무를 자동화하고 SaaS 워크플로를 복제해 SaaS 가치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치 강화와 완전 잠식의 갈림길
AI가 SaaS에 미칠 영향은 두 가지 기준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AI가 사용자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는 잠재력, 다른 하나는 외부 AI 에이전트가 SaaS 워크플로에 침투할 가능성이다.
두 축을 놓고 보면 SaaS의 미래는 네 장면으로 갈린다. △AI가 SaaS를 강화하는 AI enhances SaaS(AI가 SaaS 기능 강화) △AI로 인해 SaaS 역할이 줄어드는 Spending compresses(지출 규모 축소) △AI 에이전트가 기존 시스템 위에서 창출되는 가치를 가져가는 AI outshines SaaS(AI가 SaaS를 능가) △SaaS의 기존 가치를 일부 대체하는 AI cannibalizes SaaS(AI가 SaaS를 잠식)다.
같은 SaaS라도 어떤 업무는 AI로 인해 가치가 강화되고, 어떤 업무는 단가가 내려가거나 아예 앱이 아닌 AI 에이전트로 대체되는 상황까지 예상된다.
1│AI enhances SaaS
“AI는 보조 엔진, 코어 요새는 더 단단해진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AI가 보조 엔진으로서 SaaS를 강화하는 구간이다. 이 구간에서 AI는 제품을 뒤엎기보다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증폭기’에 가깝다. 핵심은 ‘사람의 판단’과 ‘도메인 논리’가 깊게 박혀 있고, 규제·통제된 데이터 흐름이 장벽이 된다는 점이다. 경쟁사가 겉모습을 흉내 내도 뒤에 있는 로직을 그대로 복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용자 업무를 자동화하기도 어렵고, 외부 복제 압력도 약한 편이다. 프로코어의 프로젝트 원가 회계, 메디데이터의 임상 시험 서비스가 이런 유형으로 거론된다. 관건은 ‘AI 기능 추가’가 아니라 차별화의 원천인 고유 데이터와 규칙을 지키면서, 시간 절감, 품질 향상 같은 효과를 프리미엄 가격에 반영하는 일이다.
2│Spending compresses
“열린 문 사이로 가치가 새어 나간다”
두 번째는 AI가 사용자 업무를 완전히 대체하진 못하지만, 제삼자로 전환 비용은 낮은 가장 위험한 구간이다. SaaS 워크플로가 외부에서 관측 가능하고, API가 열려 있으며, 산업 표준이 탄탄하면, 제삼자 AI 에이전트가 ‘연결’만으로도 시장가치 일부를 가져갈 수 있다. 허브스팟의 리스트 빌딩, 먼데이닷컴(Monday.com)의 태스크 보드가 사례로 제시된다.
따라서 사용자는 ‘어느 에이전트가’ 일을 지휘하느냐로 초점이 옮겨진다. 이 구간에서 SaaS의 수익성이 크게 압박받는다. 이 구간의 방어 전략은 ‘열린 문’을 ‘관리된 관문’으로 바꾸는 싸움이다. 자체 에이전트를 빠르게 출시하고, 파트너 통합을 깊게 해 전환 비용을 높이며, 핵심 엔드 포인트 접근을 통제해야 한다.
3│AI outshines SaaS
“자동화가 시장을 키우는 구간”
세 번째는 AI가 SaaS를 압도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구간이다. 사용자 자동화 잠재력은 높지만, 복제 가능성은 작다. SaaS가 보유한 독점 데이터와 룰 덕분에 완전 자동화의 출발선이 이미 앞서 있다. 이때 자동화는 기존 매출을 갉아먹지 않고, 시장을 키우는 성장 레버가 된다. 커서의 AI 코드 에디터, 가이드와이어의 보험 클레임 판정이 이 구간의 전형으로 언급된다.
이 구간부터는 제품 전략이 바뀐다. ‘AI 기능을 붙인 SaaS’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처리하는 에이전트(end-to-end agent)가 전면에 선다. 요금제도 뒤집힌다. 로그인해 버튼을 누르는 시간이 줄어들면, 계정 기반 과금은 설득력을 잃는다. 대신 고객은 ‘일이 얼마나 끝났는지’로 지불하길 원한다. 그래서 계정 기반에서 성과 기반으로 옮기고, 영업도 ‘기능’이 아니라 비즈니스 결과를 파는 방식으로 재훈련해야 한다.
4│AI cannibalizes SaaS
“자동화도 쉽고 복제도 쉽다”
마지막은 가장 치열한 전장이다. 자동화도 쉽고, 복제도 쉽다. 사람의 개입이 적고 반복이 많으며, 외부에서 워크플로가 잘 보이고, 표준화돼 있으며, 고유 데이터 수준이 높지 않고, 규제 장벽이 낮은 경우다. 경쟁은 ‘기능’이 아니라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간다. 누가 더 많은 에이전트를 안정적으로 지휘하고, 더 빠르게 스케일하느냐가 승부처다. 인터컴의 1차 고객 지원, 티팔티의 인보이스 처리, ADP의 근태 승인 등과 같은 사례다.
이 구간에서 기존 사업자가 살아남으려면 역설적으로 자신의 SaaS 활동을 AI로 먼저 대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혁신’이 아니라 ‘구식’으로 밀린다. 그리고 대부분 기업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중립 에이전트 플랫폼이 되거나 그 플랫폼을 움직이는 차별적 데이터 공급자가 되거나. 둘 다 하기는 소수만 가능하다는 냉정한 진단이 따라붙는다.
표준을 잡는 자가 질서를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SaaS 방어선은 데이터다. AI 에이전트가 일을 대신할수록, 고객 업무 데이터, 거래 이력, 도메인별 문서, 사용 패턴처럼 쉽게 대체되지 않는 데이터가 제품의 ‘본체’가 된다. 특히 외부 AI 플랫폼과 연결할 때 상대가 자사 데이터를 학습해 우리를 우회하지 못하도록 조건을 걸어야 한다는 점도 SaaS 업계가 지켜내야 할 방어선이다. 고객을 연결하는 것이 비즈니스 성공 방정식이었던 과거와 달리, 많은 연결 고리가 곧 ‘경쟁력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반대로 공격 포인트는 업계 표준이다. 에이전트 간 호출·연동 규약으로 앤트로픽의 MCP, 구글의 A2A 같은 표준이 등장했으며, 이런 표준은 네트워크 효과로 빠른 티핑 포인트와 승자 독식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는 SaaS 기업의 전략을 바꾼다. 과거엔 기능 로드맵과 UI 편의성이 경쟁력이었지만, 에이전트 시대에는 ‘누구의 표준이 기본값이 되는가’가 제품 운명을 좌우한다. 표준이 잡히면 에이전트는 그 위에서 더 쉽게 움직이고, 고객은 그 표준이 연결하는 생태계에 묶인다. 데이터 경쟁력과 표준 주도는 결국 같은 목표를 겨냥한다. 에이전트가 우회하지 못하는 ‘필수 경유지’를 만드는 것이다.
에이전트 AI 시대의 SaaS는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업무 단위로 자신을 재분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명심할 점은 에이전트 AI는 SaaS를 무너뜨리기만 하는 기술이 아니다. 업무 흐름을 재배치하고, 과금의 기준을 결과로 바꾸며, 표준 경쟁을 촉발한다. 결국 SaaS의 생존 전략은 ‘AI를 얼마나 빨리 적용하였느냐’가 아니라, 데이터를 경쟁력으로 만들고, 표준을 주도하며 성과를 가격으로 정의하는 속도에 달렸다. 방향은 정해졌다. 남은 건 실행 속도다. 따라가는 자가 아닌 선도하는 자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