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한국 기업의 인공지능(AI) 전환 속도는 매우 늦다. AI는 학습이 중요하므로 얼리 무버의 이점이 크고,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리더가 대담하게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최원표 베인앤드컴퍼니 서울오피스 대표는 최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최 대표는 세계 3대 컨설팅 기업으로 꼽히는 베인앤드컴퍼니 서울오피스를 이끌고 있다. 베인앤드컴퍼니 인수합병(M&A) 부문과 프라이빗 에퀴티(Private Equity) 부문 리더로, 인수 후 포트폴리오 회사 가치 증대 및 매각과 관련한 풍부한 프로젝트 경험이 있다. 국내외 금융기관, 대기업, 다국적기업의 전사 전략과 성과 극대화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한 경영 전문가다. 다음은 일문일답.
AI 시대 리더십은 무엇이 다른가.
“AI를 막 도입하는 시기, AI를 도입한 이후 시기에 필요한 리더십이 각각 다르다. 도입 시기에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리더 성향은 크게 오퍼레이터(operator·운영자)형과 전략가형으로 나뉘는데, AI 도입 시기에는 강력한 전략가형 리더십이 필요하다.
AI는 사람이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 사람의 근본 역할마저 바꿀 만큼 파급력이 크다. 산업과 기업 운영 방식을 지수함수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AI를 조직에 도입하기 위해선 대담함이 필요하다. 코어 사업을 기반으로 재무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회사 미션과 사업 모델을 근본에서 재설계하는 ‘AI 퍼스트 마인드 셋’ 리더십이 필요하다.
조직의 의사 결정 과정에 AI가 어느 정도 탑재된 이후에는 오케스트레이터(orches-trator·지휘자) 리더십이 필요하다. AI가 도출한 정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조직과 고객의 감성적인 부분을 판단해 종합적으로 의사 결정하는 역할이다. 기존에는 리더가 직관과 경험으로 의사 결정했다면, AI 시대에는 광범위한 데이터와 결과물을 해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조직 내부적으로는 직원의 동기 부여를 지속시키면서 협업과 시너지를 만들어 나가는 감성적 리더십이 중요해졌다. AI가 할 수 없는 일이고,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AI 확산으로 리더가 직면한 도전 과제는.
“잘못된 정보에 기반해 의사 결정하는 문제, AI에 너무 의존해 비판적인 사고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AI 도입 과정에서 직원 저항이나 데이터 프라이버시, 지식재산권 침해 같은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표준화다. 사람에게 일을 시키면 60점짜리도 나오고, 80점짜리도 나오고, 어쩌다 보면 200점짜리도 나온다. AI에 일을 시키면 대체로 80~100점 결과물이 나온다.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조직이 상향 평준화 함정에 빠지며 혁신이 사라질 수 있다. 새로운 혁신이 나타나려면 돌연변이적인 사람, 아이디어, 행동이 필요하다. 상향 평준화로 모든 결과물이 80~100점에 몰리면 오히려 혁신이 발생하지 않는다. 리더는 기존 관행과 다른 시도를 하는 사람을 용인하고, 실패를 보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조직 내에서 사람과 AI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겠다.
“현재는 AI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걸 걱정할 단계로 가지 못했다. 오히려 앞으로 2~3년 동안 ‘너무 과도해서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도입하도록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한다. 기존에 일하는 방식을 그대로 놔둔 상태로 AI를 부분 부분 도입하면, AI 의존도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제로 베이스에서 재설계해, 어떤 일을 사람이 할지 결정한 뒤 사람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AI 효율성과 인간의 전문성·창의성이 균형을 이룰 수 있다.”
한국 기업의 전환 속도를 평가하자면.
“영어권 국가 기업이 훨씬 빨리 가고 있고, 우리 속도는 매우 늦다. 한국 노동시장이 워낙 경직돼 있어, 많은 기업인은 ‘도입해도 당장 효과를 보기 어려우니, 기다리면서 다른 기업 사례를 지켜보자’고 생각한다. 타사의 실패 사례를 보고 교훈 삼겠다는 의도다.
우리가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반도체나 자동차 산업에서 세계 선두권에 오르긴 했지만, AI 도입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AI는 러닝 커브(learning curve·신기술을 학습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나타내는 곡선)가 중요하므로, 외부 실패를 교훈 삼기가 쉽지 않다. 우리 조직에서 뭐는 되고, 뭐는 안 되는지를 몸으로 체득해야 한다. 따라서 얼리 무버가 상당히 많은 어드밴티지를 가져갈 수밖에 없다. 쿠팡(2010년 설립)이 우리나라 유통 업계를 꽉 잡는 데까지 15년 걸렸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10년 뒤 산업의 리더가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큰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AI 도입에 대한 직원의 우려를 관리하는 방안은.
“AI를 잘 쓰는 회사와 안 쓰는 회사에서 일한 사람의 3~5년 뒤 역량을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발생할 것이다. AI 활용 능력은 직원 개인의 전략적 자산이 될 수 있다. 본인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 리더가 이 점을 인식시켜 줘야 한다. 직원 가치가 높아지도록 돕는 것은 곧 리더의 역할이기도 하다.
AI 도입을 위해선 톱다운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업무에 AI를 써도 되고 안 되고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업무에서 AI를 활용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정하는 것이다. 또 직원끼리 AI 사용 경험을 공유하는 ‘베스트 프랙티스 셰어링(best practice sharing)’ 과정을 통해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동료로부터 받는 압박)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다른 직원을 보면서, ‘이렇게도 쓸 수 있네, 나도 뭔가를 더 해야겠다’라는 적극성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리더가 스스로 AI를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AI 지배구조는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어떤 영역에만 AI를 쓸지 방어적으로 접근하는 사례가 많은데, 더욱 공격적인 방향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AI 지배구조는 기업이 더 성장할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영역이다. 윤리적인 가이드라인과 지배구조 체계를 만들고 고객과 이해관계인이 명확하게 소통하면, 그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그걸 통해 차별화를 이룰 수 있다. 가이드라인을 잘 정해놓은 회사가 오히려 AI를 더 잘 활용하고, 성과도 훨씬 더 좋다.”
시대가 바뀐 만큼 중간 관리자가 필요 없다는 의견이 있다.
“이전에 중간 관리자가 맡던 데이터 분석 같은 일이 자동화되며 중간 관리자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역할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재정의될 것으로 전망한다. 데이터 분석이나 의사 결정을 자동화하는 AI 도구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관리·감독하고, 팀원이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또 팀원 동기부여와 갈등 해결 역할도 여전히 필요하다. 과거에 하드 스킬(hard skill·직무 관련 전문 지식)을 발휘했다면, 앞으로는 소프트 스킬(soft skill·대인 관계와 관련된 능력)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역할이 재정의될 것이다.”
AI가 인간의 역할을 어떻게 바꿀까.
“반복적인 일이 아닌 고차원적인 분야에서 할 역할이 상당히 남아 있다. 인간 창의성이 들어가기 전 단계의 데이터 집약적인 일은 AI로 대체될 테지만,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창의성을 입히고 종합적으로 최종 의사 결정을 하는 건 결국 인간이 해야 한다. 그런 부분에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쓰면서, 인간의 가치가 더 주목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