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베인앤드컴퍼니의 新조직론 ①
디지털 혁명,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 혁신의 일상화. 요즘 기업의 리더라면 누구나 듣고 있을 주제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에 맞서 생존하려면 외부의 변화에 끊임없이 주목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된다. 맞다. 그런데 외부의 변화에 주목하는 만큼 조직 내부의 운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조직의 속도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다. 관료적이며 더딘 '기존 기업'과 창의성과 민첩성이 특징인 신생 기업은 이런 점에서 뚜렷이 구분된다. 기업이 직면한 파고를 헤쳐나가기 위해 미래에 요구되는 기업의 새로운 체질에 대한 고민을 병행해야 할 때다.
기업의 정체성과 기본 속성은 시대에 따라 진화해 왔다. 1970년대 이후 최근까지 기업의 목적은 주주 이익 극대화에 집중하는 주주 자본 우선주의 시대로 볼 수 있다. 경영진은 부채의 최적 활용, 인수·합병, 기업 분할 등을 활용해 주식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이에 대해 보상을 받았다. 주주 가치 극대화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조짐과 이를 가속화하는 동력들이 점점 선명해 지고 있다.
넘쳐나는 자본 : 기업 활동에 투자될 수 있는 글로벌 금융 자본 규모는 글로벌 GDP의 10배에 달한다. 이제는 많은 기업에 의미 있는 제약 요인은 자본이 아니라 인재와 아이디어가 되고 있다.
민첩성은 필수 생존 조건 : 서비스 산업과 디지털 기술의 확산으로 신속한 의사결정과 실행 중요성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속도의 경쟁에 뒤처지면 도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다트머스대 터크경영대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새로 상장된 기업이 5년간 생존하는 비율은 1960년대에 비해 30% 감소했다고 한다.
승자독식의 게임 : 베인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2개 이하의 상위 기업이 각 분야별 시장 이익의 80%를 장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산업 생태계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초단기 투자의 증가 : 시장의 불확실성 증대로 투자는 단기적 성향이 증가하고 있다. 레버리지, 바이백(buyback), 배당의 비중은 확대되는 반면 장기적 관점의 자본 운영은 축소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단일 목표만으로는 기업을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렵게 됐다는 뜻이다. 그럼 미래의 회사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조직의 운영 관행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가?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고 완전한 모습은 이 진화가 진행된 뒤에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몇 가지 변화는 확실해 보인다. 이들 변화가 한국 기업에 던지는 의미는 자못 크다.
전문경영인 vs 핵심 역량 장인 : 소유주와 직원 사이에서 경영관리를 수행하는 사람인 전문경영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롤 모델로 제시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 인사 체계는 전문경영인을 향하는 승진 체계를 설계하고, 이에 적합한 사람을 선별해 양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과 활동 관리에 필요한 비용이 감소하고, 자율적이고 유동적인 소팀제 조직 모델과 수평적 조직 구조가 확대되면서 기업 운영에 필요한 전문경영인의 수가 줄고 있다. 반면 가치 창출에 결정적인 기능에서 빠르고 효과적인 결정과 실행을 위해 각 기능별로 최고 수준의 통찰을 가진 리더인 핵심 역량 장인(master of mission critical roles)의 중요성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앞으로 기업은 이런 핵심 역량 장인들이 본인의 전문 역량을 더욱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자신의 경력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 자재 소싱의 전문가에게 일반 경영 관리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승진이 불가하다는 잣대를 들이대면 그는 다른 기업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경쟁사 이직 불가 조항과 같은 계약으로도 인재를 잡아두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전문경영인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우리의 인사관리 체계에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기 자산 vs 생태계 : 과거에는 주주의 자본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아웃소싱의 활용 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아웃소싱의 개념이 생태계 개념으로 이동하면서 이러한 주주 자본 측면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디지털과 기술 발전이 가치 전달의 핵심에 자리하면서 단일 기업이 수직 통합을 통해 고객의 복잡한 요구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는 게 어려워졌다.
대부분의 산업에는 이미 플랫폼이라는 개념이 적용되고 있다. 향후 기업 모델은 생태계에서의 역할에 따라 공통 플랫폼 운영자, 아웃소싱 서비스 제공자, 최종 고객을 위한 상품과 서비스 제공자라는 3가지 유형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인력 활용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외부 인력의 전문성을 고용이라는 전통적인 방법을 벗어나 활용하는 형태가 확산되는 것이다. 이제 가치 창출은 독자적인 자산을 얼마나 많이 축적했는지보다 얼마나 전략적으로 생태계를 잘 구축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같은 디지털 기술 기반 리더들은 매우 비교적 적은 직원으로 대규모의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아웃소싱은 비용 절감을 강조하는 하도급 개념에 머물러 있다. 하도급은 용어 자체에 상하 관계가 전제돼 있고, 동반 성장과 생태계의 공동 구축을 위한 파트너십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경쟁력 있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이 함께 강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상생의 관계가 요구된다. 파트너사의 관리 성과가 비용 절감이라는 단순한 숫자로 기록되고 평가되는 현재의 관행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파트너사 확보, 공동 인센티브 구축, 협업 관계 전반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혁신 파이프라인 관리에 집중해야 : 기업 스스로 혁신적 개선을 달성하는 역량의 중요성은 이미 충분히 부각돼 왔다. 특히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 말한 존속성 혁신(sustaining innovations)을 위해 기존 사업모델을 혁신하기 위한 시도가 다각도로 이뤄지고 있다. 동시에 기존의 사업 모델 자체를 위협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s)에 대한 대비까지 더해져 기업이 처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미래 기업의 생존 가능성은 이러한 두 종류의 혁신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넷플릭스는 2000년대 중반부터 기존 핵심 사업인 DVD 사업이 창출하는 현금 흐름에 기대어 스트리밍 사업으로의 세대교체를 달성해 냈다. 앞으로 경영진의 중요한 미션은 주주의 자본을 최적으로 활용하는 단계를 넘어 혁신 파이프라인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의사 결정뿐만 아니라 기존의 수직적이고 경직된 업무 관행을 수평적이고 민첩한 방식으로 바꿀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