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위클리비즈
한국은 세계 명품업계가 주목하는 황금 어장이다. 최근 5년 명품 시장 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명품 지출액은 OECD 국가 중 4위지만 증가율은 1위. 전 세계에서도 인도 다음으로 높은 증가율이다. 시장 규모는 13조원으로 세계 8위인데, 세계은행 집계 11위인 국가 경제력 규모에 비해 큰 편이다.
내수 전반이 침체된 가운데 명품 시장이 유독 급성장한 것은 비혼 인구와 남성 그루밍족(패션∙미용에 많이 투자하는 계층)의 증가 등으로 명품 구매가 늘어난 덕분으로 보인다. 20∙30대 인구의 결혼 출산이 늦어지면서 자신을 위한 소비에 주저함이 없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가 젊은 층의 소비 행태로 부상했고 이는 명품∙수입차∙여행 소비 증가로 이어졌다. 올해 상반기 벤츠∙BMW의 국내 판매량이 GDP 규모가 한국의 3.5배인 일본을 넘어선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명품업계에선 한국을 다른 아시아 명품 시장의 흐름을 가늠하는 선행 지표로 인식하고 있다.“ 파리 다음 서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1990∙2000 년대 초반 명품 브랜드를 동경하는 차상위층이 국내 명품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면, 2010년대 들어서는 초고가(Absolute Luxury) 명품을 선호하는 최상위층과 새로움과 혁신을 명품의 가치로 여기는 ‘신럭셔리(New Luxury)’층이 주된 고객이다. 이에 더해 소비자 관심이 의류 액세서리에서 라이프스타일(생활과 밀접한 제품과 서비스) 쪽으로 이동하고 온라인을 통해 해외 직접구매에 나서는‘국경 없는 소비자’가 급증하면서 국내 명품 시장 구조도 재편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 진출한 명품 의류 유통업체 육스(YOOX)처럼 해외 온라인 유통 기업의 국내 진입도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명품 구매력에 걸맞게 한국 자체 브랜드도 세계적 명품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뚜렷한 승자는 없지만 다양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한국만의 전통 유산과 이야기를 브랜드에 녹여 넣는 것은 이미 진행중이다.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는 한국 아시아의 귀한 약재를 원료로 사용한다는 브랜드 스토리를 제품부터 홍보∙매장까지 일관되게 전달해 효과를 거뒀다. 혁신적 사업 모델로 밀레니얼 세대를 유혹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최근 프랑스LVMH그룹으로부터 600억원을 투자받은 패션 안경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독립 디자이너와 공동 작업을 통해 다각형 안경알이나 동물 무늬 안경테 등 모험적 디자인을 선보여 젊은 층을 사로잡고 있다. 패션 브랜드 루이까또즈를 보유한 태진인터내셔널은‘플랫폼L’이라는 아트센터를 운영해 신진 예술가를 육성하는 방식으로 한국발 명품 브랜드의 탄생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