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
[커버스토리 = 유통업계 ‘원톱’ 주인공은?]
-신우석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아마존도 커머스로는 돈 못벌어, 클라우드·광고 사업이 ‘캐시카우’죠”
[한경비즈니스=안옥희기자] 전통 오프라인 기반의 유통 기업들이 온라인에 방점을 찍으며 저마다 디지털화(DT)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현재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미국처럼 ‘원톱’이 정해지지 않았고 쿠팡·티몬·마켓컬리 등 온라인 기반의 사업자들과 롯데·신세계·현대·GS 등 오프라인 기반의 대기업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신우석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는 “유통 기업들이 급변하는 유통 환경에서 시장 흐름을 주도하고 경쟁력을 높이려면 정보기술(IT)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며 “해외 선진 모델인 미국 아마존과 월마트 혁신 사례에서 유통업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통 기업들을 대상으로 중·장기 성장 전략, 디지털 혁신 전략, 조직 재설계 등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신 파트너를 4월 9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유통 대기업과 이커머스 업체들이 물류센터를 확충하고 시스템을 재정비 중이다. 유통에서 물류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인가.
▶ “원래 물류는 유통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이커머스 시대에 새롭게 각광받는 창고는 아마존이 ‘풀필먼트 센터(FC : Fulfillment Center)’로 부르는 것이다. 아마존이 이 명칭을 사용하자 국내외 기업도 혁신 기술이 첨가된 물류센터를 풀필먼트 센터로 명명하기 시작했다. 기존 물류센터를 뜻하는 디스트리뷰션 센터(DC)와 비교해 FC는 더 복잡한 과제를 수행한다. DC가 매장까지만 상품을 가져다줬다면 FC는 제품 입고부터 재고 관리·피킹·출고·가공·배송까지 완결적으로 수행한다. 이제 당일 배송은 옛말이고 4시간 배송, 3시간 배송, 30분 배송까지 속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효율성 확보가 속도를 좌우한다. FC의 효율성을 얼마나 높이느냐가 이커머스 운영 전체의 효율성을 좌우한다고 볼 수도 있다.”
-업계가 기존 물류센터보다 고도화된 ‘아마존식 풀필먼트 센터’에 집중하는 이유는 뭔가.
▶ “FC는 기존 물류센터보다 고도화된 시스템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유통 업체들이 아마존식 풀필먼트 서비스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기존에는 온라인 주문이 들어오면 점포에서 직원이 고객들이 주문한 것을 판매대를 찾아다니며 손으로 담아 포장해 보내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주민이 하루 10~20건일 때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수만 건으로 늘어나면 필요한 수준의 효율성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노동력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효율성이 확보돼야 속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인건비에 의존하지 않고 자동화 설비와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효율적인 오퍼레이션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바로 FC가 이커머스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각되는 이유다.”
-아마존 벤치마킹 효과는 언제쯤 나타날까.
▶ “유통 기업들이 ‘한국형 아마존’을 선언하며 자동화 설비 등 아마존식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 미국 아마존, 중국 알리바바, 징둥닷컴처럼 고도화된 FC의 네트워크 구축을 완성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오프라인 매장보다 디지털 애플리케이션(앱)과 FC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인식의 전환도 미완성 상태다. 그런 의미에서 각 유통 업체의 진짜 실력은 자동화 설비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후에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아마존은 아마존닷컴과 함께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마존웹서비스(AWS)라는 글로벌 톱 수준의 IT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알리바바도 그룹의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 부문인 알리바바 클라우드를 운영하고 있다. 시스템 도입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FC 운영을 상시적으로 최적화할 수 있는 빅데이터 분석과 그 결과를 시스템에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부분이 핵심이다.”
-업계가 아마존 등 해외 선진 모델을 국내에 적용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있나.
▶ “국내에서 초기에 이커머스 물류센터를 구축하려고 했던 사업자들이 겪었던 대표적인 시행착오는 자기 사업의 특성을 이해하기보다 해외 선도 업체가 사용하는 설비와 시스템을 경쟁적으로 들여왔던 것이다. 모든 유통 업체에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만능 방식은 없다. 각 유통 업체가 취급하는 상품의 특성에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자사 비즈니스 특성에 최적화된 형태로 FC를 디자인하고 구축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국내 이커머스 사업은 어느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나.
▶ “새로운 개념의 FC를 몇 개 구축해 운영해 보고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조금씩 선도 업체와의 갭을 줄여 나가고 있는 단계다. 이때 핵심은 IT 인력이다. 이커머스 초기에는 고도화된 이커머스 FC를 설계할 만한 전문성을 갖춘 IT 인력이 국내에 많지 않았다. 오프라인 물류를 담당하던 인력이 온라인을 배워 가며 초기 단계를 소화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최근에는 내부에 전담 조직을 꾸리고 그동안의 시행착오들을 반영해 자사 고객과 상품 특성에 맞는 물류 오퍼레이션을 구축해 가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 IT의 중요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 “유통의 핵심인 물류가 빅데이터 분석 등 IT 시스템 활용의 첨단 영역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IT는 더 이상 유통에서 오퍼레이션을 지원하는 비핵심 분야가 아니다. 유통 기업들은 우수한 IT 인력들이 조직 핵심에 포진해 활약하는 쿠팡·티몬 같은 이커머스 기업과 최소한 대등한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은 물류와 모바일 앱 등 온라인 사업의 핵심이 IT다. 이제는 이런 IT 시스템을 고객 눈높이에 맞춰 고도화할 필요성이 생겼다. 신세계·롯데·GS 등 유통 업체끼리만 비교해선 안 된다. 네이버·카카오톡·페이스북을 사용하며 눈높이가 높아진 고객들에게 앱을 만들어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동안 거의 방치해 둔 내부 IT 역량을 어떻게 얼마나 빠른 속도로 끌어올리느냐가 앞으로 유통 업체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풀필먼트 시스템 구축 등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데 일각에선 수익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 “아마존이 수익을 내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흥미롭게도 아마존 역시 커머스 사업(아마존닷컴)으로는 겨우 손익분기점(BEP)을 맞추거나 영업이익 1~2% 정도밖에 내지 못한다. 돈은 아마존웹서비스(AWS), 아마존 애드버타이징(Amazon Advertising)으로 벌어들인다. 아마존닷컴 자체가 거대한 이커머스 플랫폼이기 때문에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아마존닷컴의 여러 공간을 광고 무대로 활용한다. 즉 커머스와 제2 사업으로 ‘투 트랙 전략’을 펴는 것이다. 플랫폼으로서 이커머스를 키워 가려는 사업자들이 고려해야 할 것은 커머스 플랫폼 자체로는 고수익 창출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아마존이 플랫폼의 경쟁력을 활용해 광고 사업이나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으로 고수익을 창출하는 것처럼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제2, 제3 사업 등 별도의 수익원을 고민해야 한다.”
-급변하는 유통 환경에서 시장 흐름을 주도하고 경쟁력을 높이려면 어떤 전략을 준비해야 할까.
▶ “국내 유통 대기업은 월마트, 스타트업은 아마존과 상황이 비슷하다. 2016년 월마트는 아마존을 따라잡기 위해 제트닷컴(Jet.com)을 3조원에 인수하고 제트닷컴 창업자인 마크 로어에게 전자 상거래 사업 대표를 맡겼다. 국내에서도 이커머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성장을 제대로 견인할 수 있는 인적 역량 확보가 굉장히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로어 대표 덕분에 월마트는 기념비적인 이커머스 성장 곡선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을 배제한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역량과 경쟁력을 최대한 이커머스 사업에 이전하고 연계 방안을 찾아야 한다. 월마트 사례를 통해 국내 유통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다.”
-앞으로 이커머스 시장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 “자사 상품과 고객 특성에 최적화된 FC 구축, 이를 오퍼레이션하는 체계와 역량을 확보해 고도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국내 유통시장은 중국 알리바바, 미국 아마존처럼 원톱이 이미 정해진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3~5년 사이 유통 업체 또는 이종업체 간 합종연횡과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질 것이다. 이를 통한 시장 재편 가능성도 있다. 유통 기업은 오프라인 기반과 기존 고객군, 상품·서비스 등 장점을 계속 키우면서 부족한 역량을 신속하게 효과적으로 채울 기회가 있다. 즉 직접 강화할 부분, 제휴와 파트너십을 통해 보완할 부분, M&A를 통해 외형과 역량을 단기에 확보할 부분을 나눠 조화롭게 전략을 구사하는 게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