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Biz Focus] 기생충의 환호 이어가려면…`미디어 플랫폼`을 키워라

[Biz Focus] 기생충의 환호 이어가려면…`미디어 플랫폼`을 키워라

도영진 베인앤드컴퍼니 부파트너

  • 2020년8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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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z Focus] 기생충의 환호 이어가려면…`미디어 플랫폼`을 키워라

지난 2월 10일,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는 산업적으로도 한국 영화계에 중요한 의미를 주는 이벤트였다. 오랫동안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일종의 라이벌 관계였다. 그동안 `영화 업계`는 예술성과 상업성 모두에서 드라마보다 우위에 있어 왔다. 그런데 드라마 제작비가 높아지고, 영화 제작 인력, 기술, 배우가 드라마로 넘어가면서 둘 사이 경계가 모호해졌다. 두 영역 모두 최근까지 국내 사업 모델의 구조적 한계로 매출과 제작비의 상한선이 명확했다. 미국 시장 제작비와 비교해보면 10분의 1 수준이었다.

그런데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국내 드라마 시장에 큰손으로 등장하면서, 드라마 제작비가 몇 배 이상 커졌다. 평균 제작비로 치면 여전히 그 차이가 크지만, 대작 기준으로 보면 미국 드라마 제작비의 4분의 1~5분의 1까지 격차가 좁혀졌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 제작비는 그 격차가 크다. 한국 영화 대부분은 한 작품의 전체 수익(life-time value) 중 70% 이상이 개봉 이후 한 달간 국내 극장 매출에서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대작 기준으로 한국과 미국 작품의 제작비는 여전히 15~20배까지도 차이가 난다. 기생충은 한국 영화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런 환호는 코로나19로 10일이 채 지속되지 못했다. 매월 1500만~2000만명 규모가 유지됐던 국내 극장 관객은 4월 100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코로나19 이후 미디어 업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디지털 OTT 플랫폼의 월간 사용자가 작년 동기 대비 100% 이상 성장했다. 원래 미디어 산업은 `제작사`와 `투자·배급사`, 고객 접점을 운영하는 극장과 디지털 플랫폼 등의 가치 사슬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디즈니, 워너브러더스, 유니버설 등 이른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사업 영역은 `투자·배급`에 상당 부분 집중돼 있었다. 그런데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등 대형 자본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가 투자·배급사를 건너뛰고 직접 제작사에서 콘텐츠를 소싱하면서 스튜디오들에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또 넷플릭스 등장 이후 케이블 TV 가입자가 감소하면서 이들 스튜디오들의 모기업들이 운영하는 방송 사업에도 큰 위기가 닥쳤다.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 능력이 있는 크리에이터들은 글로벌 스튜디오들과 디지털 플랫폼 간 콘텐츠 확보 경쟁의 큰 수혜자들이다. 한국 드라마 제작사들 또한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 산업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과거 지상파 예산으로는 회당 5억~6억원이 최대였던 드라마 제작비가 `킹덤`에서는 20억원 수준이 됐다. 영화 산업 또한 드라마의 뒤를 이어 글로벌 OTT와 협업을 확장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대표적인 작가, 감독, 배우를 모아놓는 것만으로도 높은 가치를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이제 CJ, JTBC 등 전통 미디어 기업과 통신사와 지상파 연합, 카카오 등 디지털 기업은 더 많은 우수한 크리에이터들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업계 전문가는 소수 글로벌 플랫폼에 의존하는 현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현재 글로벌 플랫폼에서 오는 수혜는 단기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려하는 경쟁 상대는 바로 중국이다. 현재 한국 드라마, 영화가 중국 대비 우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격차는 몇 년 안에 좁혀질 수 있다고 평가된다. 만약 한국과 중국 콘텐츠가 유사한 수준의 우수성을 갖게 된다면 글로벌 플랫폼 측에서는 한국 콘텐츠용 예산을 언제 줄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과연 한국 영화, 드라마 제작 산업은 시장 기대처럼 글로벌 OTT를 레버리지로 해서 지속 성장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수년 안에 일어나야 하는 것일까.

우선 한국 콘텐츠 산업의 글로벌화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필요하다. 한국적인 콘텐츠를 잘 만들어 해외에 배급하는 수출 모델로는 글로벌화에 한계가 있다. 기생충이나 BTS는 글로벌화에 성공한 콘텐츠가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한두 개 사례만으로 글로벌화에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 오스카상 후보에 매년 꾸준히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기반을 갖춰야 한다. 대안으로 제작 시스템 자체의 글로벌화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한국의 제작 시스템과 외국 아티스트, 혹은 배우가 함께 만든 작품이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것 또한 글로벌화의 한 비전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창작 역량은 세계 시장을 리드할 만한 수준이다.

최근 일본 웹툰 시장의 1등 사업자가 된 `픽코마` 매출에서 한국 웹툰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한국 작품은 이 서비스가 제공하는 전체 웹툰 중 2% 수준이다). 또 넷플릭스의 동아시아 주간 상위 매출에서 한국 드라마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떤 비전과 시스템으로 뒷받침할 것인가다.

한국 콘텐츠 산업이 글로벌화를 위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포인트는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의 육성이다. 지금의 성장은 한국 창작물이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해외 시장에 배급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가 디지털 플랫폼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면, 언젠가 넷플릭스가 떠난 한국 콘텐츠 업계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때 한국 최고 제작사들은 중국의 하도급 업체가 돼버릴지도 모른다. 매년 콘텐츠 확보에 20조원씩 쓰는 글로벌 플랫폼과 경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아직 한국 시장에 쓰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 글로벌 플랫폼에만 의존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한국 창작자들의 위기의식을 잘 활용한다면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할 로컬 플랫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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