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인의 위닝 전략 - AI 운영 혁신 시리즈 ② 통신]

[한경비즈니스= 베인앤드컴퍼니 박지호 파트너·최태호 부파트너] 국내 통신 3사가 저마다 인공지능(AI)을 전면에 내걸었다. 인프라와 모델, 서비스를 아우르는 전략을 앞세운 곳이 있는가 하면, 산업 전환을 겨냥한 플랫폼 구상이나 음성 기반 서비스를 내세운 곳도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 시장이 성숙 국면에 접어드는 등 본업 사정이 녹록지 않다 보니 대외 메시지에서 절박함이 엿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AI를 상품으로 내놓는 일 못지않게 내부 운영에 AI를 도입하는 ‘운영 혁신’도 함께 챙겨야 한다는 점이다.
설비를 어디에 놓을지, 낡은 시스템을 언제 정리할지, 무엇을 어떤 조건으로 사 올지 같은 내부 판단은 모두 수익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설비·시스템·계약, 해외 통신사가 먼저 손댄 세 곳
해외 주요 통신사의 AI 활용에는 공통된 순서가 있다. 새 사업을 벌이기 전에 매일 반복되는 판단부터 손봤다는 점이다. 그 판단은 설비와 시스템, 계약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설비다. 통신사가 가장 자주 내리는 판단은 어디에 무엇을 놓고, 어떻게 돌리고, 언제 걷어낼지를 정하는 일이다. 미국의 한 대형 통신사는 실제 통신망을 그대로 본뜬 가상 모델, 이른바 디지털트윈 위에 장애 알람과 기상·정전 기록, 정비 일정을 한데 놓아 하루 7만2000건씩 쏟아지던 결함 신호를 실제 손댈 소수의 사건으로 압축했다.
투자와 전력도 마찬가지다. 무선과 유선, 기업영업이 제각기 세우던 구축 계획을 한 지도 위에 겹쳐 보자 같은 지역에 두세 번 들어가던 공사가 정리된 사례가 있다. 설비별 전력 사용량을 학습시켜 유독 더 소모하는 지점을 찾아내고 쓰지 않는 시간에 장비를 재우는 것만으로 15~25%를 아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장 어려운 것은 걷어내는 판단이다. 쓰이지 않는 장비가 연결만 된 채 전력과 유지비를 계속 먹지만 끄는 순서를 잘못 잡으면 품질 민원으로 돌아온다.
유럽의 한 통신사는 2만 개가 넘는 접속 국사의 구리선 철거를 대상 선정, 차단, 철거·재활용 3단계로 나누고 고객 이전율과 철거 진척, 회수한 구리의 가치까지 한 화면에서 관리했다. 걷어내는 일도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상시 운영 체계여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는 시스템이다. 통신사의 IT 자산은 쌓이기만 하고 정리되지 않는다. 서비스가 하나 생길 때마다 애플리케이션이 붙고 클라우드 계정이 열리지만 정작 그것을 지금 누가 얼마나 쓰는지는 어디에도 정리돼 있지 않다.
셋째는 계약이다. 장비와 공사, 외주 개발에 이르기까지 계약서가 수천 건씩 쌓여 있지만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일일이 읽어 비교하는 일은 그동안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AI 투자 재원은 IT 비용에서 나온다
운영 혁신은 AI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 순서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어디에 기회가 있는지 진단하고, 그 기회를 짧은 기간에 증명하고, 검증된 사례를 전사로 퍼뜨리는 확산까지 한 조직이 책임져야 한다. 세 단계를 끝까지 밀고 갈 실행 역량이 성패를 가른다.
출발점은 비용 구조 진단이다. AI 투자에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그 재원은 기존 IT 비용에서 먼저 마련해야 한다. IT 지출을 자산과 기능 단위로 쪼개 동종업계와 견주면 과다 투자 영역이 드러난다. 이 방식으로 25~30%의 절감 기회를 찾아낸 사례도 목격된다. 낡은 애플리케이션을 정리하고 놀고 있는 클라우드 자원을 걷어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클라우드에서는 10~15%, 벤더 통합에서는 외부 지출의 7~25%가 절감 여지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애플리케이션 정리의 위력은 한 글로벌 건축 설비 기업이 보여줬다. 이 회사는 애플리케이션 3000여 개와 ERP(전사자원관리) 시스템 80여 개를 떠안고 있었다. 매출 대비 기술 지출이 업계 중간값의 1.5배였다.
흩어진 앱 정보를 한곳에 모으고 라이선스 비용을 앱 단위로 연결한 뒤 앱마다 유지·투자·이전·폐기 중 하나로 운명을 정했다. 그 결과 첫해 800만~1000만달러, 연간 기준 3000만달러의 절감 기회가 나왔다. 전체 앱은 65% 줄었다. 벤더 구조도 지나치기 쉽다. 거래처가 잘게 흩어져 있으면 협상에서 쓸 지렛대가 없다.
6주 만에 증명하고 전사로 퍼뜨려야 성과가 남는다
성과를 빠르게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독일의 대표 통신사 사례를 짚어보자. 이 회사는 구매 조직이 여기저기 흩어져 조직 전체의 효율을 갉아먹고 있었다. 내부 운영 혁신을 위해 6주 만에 구매 담당자용 생성형 AI 비서를 만들어 사내 시스템에 올렸다. 사내 규정과 구매 전략을 근거로 답을 주고, 기존 외주 계약을 의미 기반으로 검색해 알맞은 공급사를 추천하는 두 가지 기능을 담았다.
구매 담당자 10~20명이 200개 넘는 질문을 던져 AI 비서의 성능을 높였고 이후 3단계 확장 로드맵이 나왔다. 눈여겨볼 것은 일하는 방식이다. 이 통신사에서만 20명이 붙어 외부 개발팀과 함께 만들었고 3회의 스프린트와 더불어 6주간 매일 진행 점검 회의를 진행했다. IT 조직에 일을 던져놓는 방식으로는 이 속도가 나오지 않는다.
계약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마케팅 벤더 견적 문서 8200여 건을 단 일주일 만에 분석해 5670만유로 규모의 지출을 낱낱이 드러냈다. 10만유로가 넘는 고액 계약을 추려낸 뒤 출장비와 관리비 같은 군더더기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가려냈다.
미국의 또 다른 디지털 스포츠 기업은 IT·클라우드 계약 200여 건을 2주 만에 훑어 지급 조건과 수수료 상한, 갱신 조항이 벤더마다 제각각인 지점을 협상 카드로 썼다. 계약서에서 핵심 조건을 뽑아내는 정확도는 95% 안팎, 걸리는 시간은 이틀이다. 사람이 하면 5~7일 걸리는 일이다.
파일럿에 멈추지 않으려면 전사 확장 박차 가해야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전사 확장이다. AI 전환이 파일럿에서 멈추는 조직과 그렇지 못한 조직은 보통 여기서 갈린다. 영업 인력 3만 명, 개발자 1만3000명을 둔 한 글로벌 기술 기업은 개발 도구부터 손댔다.
생성형 AI 코딩 도구를 개발 환경에 심어 6개월 안에 개발자 전원에게 배포했고 첫해 생산성이 8~12% 올랐다. 영업 조직에는 통합 검색 창구를 붙여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시간을 25% 줄였다. 단계별 배포 로드맵과 핵심성과지표(KPI) 대시보드를 처음부터 함께 설계한 것이 갈림길이었다.
내부에서 검증된 프로세스는 상품이 된다. 미국 본토에서 가장 넓은 광케이블망을 가진 루멘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잇단 인수합병으로 뒤엉킨 구리선·광케이블·국사 시스템 정보를 하나의 데이터 체계로 묶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자 배차와 설비 폐기, 무중단 회선 시험을 자동화했다.
종이 서류와 티켓으로 굴러가던 회선 개통은 고객이 직접 처리하는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방식으로 바꿨다. 이렇게 통신망 현대화를 마친 뒤 하이퍼스케일러와 데이터센터 사업자들로부터 85억달러 규모의 신규 계약을 따냈다.
‘AI를 위해 믿고 쓰는 네트워크’라는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데이터센터 수요는 현재 약 2억4000만 제곱피트에서 2028년 약 10억 제곱피트로 4배 이상 불어날 전망이다.
결국 순서의 문제다. 내부에서 통하지 않은 AI가 밖에서 팔릴 리 없다. 어디서 시작해 무엇을 증명하고 어떻게 퍼뜨릴지 그 청사진을 그리고 이를 착실히 수행하는 기업만이 진정한 의미의 ‘AI 컴퍼니’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