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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잎키우는 PEF, 큰돈붓는 VC…기업 투자공식 바뀐다

떡잎키우는 PEF, 큰돈붓는 VC…기업 투자공식 바뀐다

  • 2021년3월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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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잎키우는 PEF, 큰돈붓는 VC…기업 투자공식 바뀐다

 

[매일경제=강두순, 박창영 기자]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인 한국 스타트업의 투자 매력도가 높아지면서 이들을 선점하기 위한 경영참여형사모펀드(PEF)와 벤처캐피털(VC) 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그 결과 기존 PEF와 VC 간 업무 영역이 허물어지는 현상이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기존엔 VC가 유망 기업을 발굴하고, PEF가 이를 한 단계 레벨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펀드 규모를 키워 자금 여력이 풍부한 VC가 이미 성장궤도에 진입한 조단위 기업가치의 유니콘 기업에 투자하고, PEF는 기존 주요 투자처였던 제조업 등 전통산업뿐만 아니라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성장성이 좋은 테크(기술)·인터넷 기업에 과감히 배팅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시장 패러다임 변화는 쿠팡이 100조원대 기업가치로 미국 증시에 상장되는 등 일련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PEF가 VC 영역에 도전하는 대표 분야로는 모빌리티 업계가 꼽힌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세계적인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로부터 2000억원 투자 유치를 앞두고 있다. 2017년 또 다른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인 TPG(텍사스 퍼시픽 그룹) 등에서 5000억원을 유치한 지 3년 만이다.이 기업이 2019년까지 영업손실 221억원을 냈다는 점에서 의외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가장 기본적인 지표로 삼는 글로벌 PEF 운용사가 성장 가능성만을 보고 거액을 베팅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쟁사 티맵모빌리티 역시 국내외 PEF 운용사가 눈독을 들이긴 마찬가지다. 카카오모빌리티처럼 뚜렷한 수익 모델을 입증해 보이지 못했지만, 최근 어펄마캐피탈과 이스트브릿지에서 40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최원표 베인앤드컴퍼니 한국 대표는 "모빌리티 업계는 비즈니스상으로만 보면 VC가 투자하는 것이 맞는 산업"이라며 "전통 산업에 대한 투자만으로 수익을 올리기 어려워진 PEF 운용사가 디지털 기업에 손을 뻗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성장 과정에서 VC와 PEF 투자가 겹치는 경우도 빈번히 관측된다. VC가 애써 키운 스타트업을 PEF 운용사에 거저 양보하기를 꺼리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중국계 벤처캐피털 세쿼이아캐피털은 최근 국내 PEF 겸 VC인 IMM인베스트먼트와 함께 무신사에 1300억원을 투자하며 기업가치 2조5000억원을 인정받았다. 투자 규모상 PEF 운용사가 진입할 단계였는데, 2019년 이미 무신사에 20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는 세쿼이아캐피털이 후속 투자에 의지를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IMM인베스트먼트는 과거 무신사에 VC로서 소액을 투자한 것에 이어 이번엔 PEF 운용사로서 자금을 투입해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갓 출발한 기업에 PEF와 VC가 공동투자자로 협력하며 가치를 빠르게 올리는 사례도 관측된다. 2017년 설립된 5세대 이동통신(5G) 소재 기업 웨이비스는 2019년 PEF 운용사 SG프라이빗에쿼티(PE)와 한국투자파트너스, NS인베스트먼트 등 VC에서 도합 15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최근에는 제이앤PE, 무림캐피탈, KT인베스트먼트 등에서 총 18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업은 무선통신과 방위 산업에서 사용되는 질화갈륨(GaN) 트랜지스터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한다는 점에서 적자에도 전방위적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풀이된다.

웨이비스 투자에 관여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요새 성장 기업으로 분류되는 회사는 벤처나 초기 단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며 "PE는 과거 플랫폼 산업 등 불확실성이 큰 분야에는 관심이 덜했지만 요즘 신성장산업을 외면하고서는 그로스캐피털을 집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PEF와 VC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은 최근 있었던 쿠팡의 상장으로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지난해만 해도 기업가치로 15조원 수준을 인정받았던 쿠팡이 최근 뉴욕 증시에 상장하며 100조원까지 가치를 끌어올린 이후 투자업계에 지각변동이 생긴 것이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는 "최근 전통 산업에는 돈도 잘 안 모이고, 엑시트도 잘 안 되니까 이왕이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과감하게 투자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PEF 운용사 관계자는 "적자를 내고 있는데도 밸류를 급성장시키는 사례가 빈번히 나타나며 애매한 EBITDA를 내는 기업보다 적자기업이 투자받기에 유리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PEF와 VC의 영역 다툼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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