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 기업개조 승부사 PEF ① ◆
[매일경제=강두순, 진영태, 박창영 기자]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을 주도해 온 `경영 참여형 사모투자펀드(PEF)`에 인수된 국내 기업들의 성장성이 전체 기업 평균의 3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들 PEF의 기업 인수와 경영 참여가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메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매일경제가 글로벌 컨설팅기관인 베인앤드컴퍼니와 함께 2010년부터 2020년까지 과거 10년간 경영 참여형 PEF의 `인수 후 매각 기업`(지분가치 1000억원 이상) 50개사를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연평균 11.3%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국내 전체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통계청 자료)인 4%의 3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PEF 투자를 받은 기업들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연 10.6%를 기록해 1.3%에 그친 국내 기업들의 평균 영업이익 증가율의 8배를 웃돌았다.
최원표 베인앤드컴퍼니 한국대표는 "PEF들이 투자 기업의 비용 절감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그보다는 다양한 기업가치 제고 활동을 통해 기업의 외형과 내실을 동시에 키우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분석"이라고 설명했다.
PEF는 기업 성장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자금력과 새로운 전문경영진으로 진용을 갖춘 구원투수로 나서 피투자 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PEF의 투자 영역이 소비재뿐 아니라 보험·카드와 같은 금융업과 반도체를 비롯한 제조업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있는 만큼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또한 PEF가 키운 기업들은 일종의 보증수표처럼 인식되면서 M&A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기업들은 기업가치와 무관한 경영목표를 갖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PEF는 보통 5년 안팎의 기간 기업가치를 높여 재매각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 효율과 체질 개선을 중시하게 된다.
PEF, 정체기업에 `성장판` 이식…1천억 환경업체 1조 가치로 키워
[매일경제=강두순, 박창영 기자] `경영참여형 사모투자펀드(PEF)`인 어펄마캐피탈은 2016년 코오롱그룹에서 국내 수처리 부문 1위인 코오롱워터앤에너지 경영권을 자기자본 550억여 원과 인수금융을 더해 1250억원에 사들였다. 수처리 사업을 정리하려던 코오롱그룹과 해당 산업의 미래를 본 어펄마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거래였다. 어펄마는 최고재무책임자(CFO)이던 임추섭 전무를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하고, 수주 건수 대신 수주 성공률을 핵심성과지표(KPI)로 제시하는 등 체질 개선 작업에 돌입했다. 소각장과 매립장 등 전후방 업체를 추가 인수해 덩치를 키우고 비용 구조를 개선했다. EMC홀딩스라는 이름으로 거듭난 이 환경관리회사는 피인수 4년 후인 지난해 SK건설에 1조500억원의 깜짝 가격으로 매각됐다. 어펄마가 적극적인 볼트온(인수한 기업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유관 기업을 추가로 사들여 시너지를 노리는 전략)으로 회사를 키워 엑시트에 성공한 것이다.
PEF가 인수한 기업의 실적이 대폭 개선되는 성과가 잇따르면서 이들의 경영전략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일명 VCP(Value Creation Plan)라고 부르는 기업가치 증진 프로그램이다. 피인수사의 강점과 단점을 면밀히 파악하고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사, 투자, 인수·합병(M&A) 등 필요한 전략을 촘촘하게 수립한다. 날로 높아지는 출자자(LP)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글로벌 PEF는 인수 수개월 전부터 VCP를 준비한다. PEF에 인수된 기업들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율이 평균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핵심 비결이다. PEF는 `마른 수건 쥐어짜내듯 비용만 절감해 기업가치를 높인다`는 일각의 선입견과 다른 것이다.
최원표 베인앤드컴퍼니 한국대표는 "많은 산업이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매출을 키워가는 기업에 더 큰 프리미엄을 부여한다"며 PEF가 피인수 기업의 성장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PEF는 각각 개성 있는 VCP를 창출하려고 시도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최적의 경영진을 선임하고 뚜렷한 경영 목표를 제시하며 끊임없이 실적을 점검·관리하는 것이다. 아울러 유관 기업을 추가로 인수해 시너지 효과를 살리는 볼트온 전략을 실행하는 PEF도 증가하고 있다.
베인캐피털과 골드만삭스가 인수했던 화장품 회사 카버코리아는 VCP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두 PE는 인수 후 즉각 외부 전문인력으로 CEO, 최고마케팅책임자(CMO), CFO,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채우고 기업가치 창출과 연동된 강력한 인센티브 제도를 실시했다. 인수 후 조기에 수립한 VCP를 통해 5개 성과 창출 기회를 파악한 뒤 20여 개 과제를 설계하고, 기존 대비 3배의 성과를 목표로 설정했다. 또한 기업 의사결정을 창업자 1인에게 의존하는 기존 시스템을 탈피해 이사회와 경영진의 역할을 키웠다. 최 대표는 "중견기업은 대부분 오너 한 명의 능력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많다"며 "그러나 연매출이 500억원을 넘어서면 창업자 원맨쇼로 해결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ING생명(현 오렌지라이프)은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ING그룹의 한국법인이었으나 국내 보험업계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MBK파트너스는 2013년 ING생명 인수 직후 국내 보험업계에서 외자계 보험사 운영 경력이 탄탄한 고급 인재들을 신규 영입했다. 4개의 성과 창출 기회를 파악한 뒤 24개 과제를 설계했다. 전속설계사 위주 판매 채널을 법인보험대리점(GA)과 방카슈랑스 등 고성장 채널로 확장하면서 인수 4년 만에 기업가치를 1조8000억원에서 3조9000억원으로 높일 수 있었다. 성장성 정체로 고민하는 한국 기업은 PEF를 해결사로 끌어들여 비핵심 계열사와 사업 부문을 PEF에 카브아웃(분할 매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이 기내식·면세사업부를 한앤컴퍼니에 매각한 게 대표적이다.
프라이빗에쿼티펀드(PEF)는 현행 자본시장법에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라고 불린다. 기업의 소수 지분이나 경영권을 사들여 가치를 높인 뒤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콘셉트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라임·옵티머스 같은 헤지펀드(전문투자형 사모펀드)와는 구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