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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명순영 기자] 자동차 제조사가 보험을 한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실행 중이다. 글로벌 전기차 기업 테슬라는 2019년부터 미국에서 자사 자동차 보험을 판매해왔다. 2020년부터 중국, 유럽 등으로 사업을 넓혔다.
테슬라가 보험업에 진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방대한 데이터다. 테슬라는 운전자가 어떤 속도로 달리는지, 얼마나 먼 거리를 달리는지, 급가속·급정거는 하는지 안 하는지 등을 안다. 주행·충전·고객 정보 등 촘촘한 데이터를 토대로 맞춤형 자동차 보험을 산정한다.
이를 토대로 기존 보험 대비 20~30% 저렴한 상품을 제공 중이다. 전체 가입자 평균을 계산해 보험료를 책정하는, 기존 보험사의 ‘둔한’ 방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보험사를 만들 것”이라며 “향후 보험 사업이 테슬라 전체 매출의 30~40%를 차지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신우석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는 이를 ‘임베디드 파이낸스(Embedded Finance·임베디드 금융)’의 진화라고 불렀다. 임베디드 금융은 비금융 회사가 금융 회사의 금융 상품을 중개·재판매하는 것을 넘어 자사 플랫폼에 핀테크 기능을 내장하는 것을 뜻한다. 네이버 금융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이 미래에셋캐피탈과 손잡고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입점 사업자를 대상으로 신용대출 상품을 출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우석 파트너는 “비금융사와 금융사가 협력한 형태인 ‘○○페이’가 1단계라면, 데이터를 토대로 맞춤형으로 진화하는 것을 2, 3단계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임베디드 금융은 비금융사가 금융사와 결합한 ‘페이’라고 쉽게 이해하면 될까.
A. 맞다. 쿠팡페이, 네이버페이와 같은 형태를 떠올리면 된다. 최근 ‘선구매 후지불(BNPL·Buy Now Pay Later)’이 보편화됐다. 결제 업체가 먼저 물건값을 가맹점에 지불하고 소비자는 결제 업체에 후불 결제하는 제도다. 이런 것이 임베디드 금융이다. 11번가에서 LG TV를 살 때 신한카드를 연계해놓은 네이버페이로 결제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 경우 11번가라는 비금융 플랫폼이 신한카드라는 금융사와 연계해 고객에게 보다 편리하고 완성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Q. ‘BaaS’라는 개념과 유사한가.
A. 임베디드 금융을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보면 된다. BaaS(Banking as a Service·서비스형 은행)도 유사한 개념이지만 공급자에서 바라보느냐 수요자에서 바라보느냐의 차이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BaaS는 금융사 입장이다. 앞서 언급한 11번가 사례에서 신한카드는 BaaS라는 용어를 쓸 수 있다.
Q. 시장 성장세가 어떤가.
A. 페이만 놓고 본다면 지난해 기준 글로벌 시장 규모가 2조6000억달러였다. 전체 결제 시장의 5%를 차지했다. 2026년이면 7조달러로 커진다. 비중은 10%로 늘어날 것이다. 쿠팡이 한번 손가락을 미는 것만으로 결제를 끝내는 편리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고객은 끊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편리함을 추구한다. 비금융사와 금융사가 ‘번들 효과’를 누리며 지배적인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다.
Q. 한국은 신용카드 문화가 잘돼 있어 해외에서처럼 페이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A. ‘임베디드 금융’은 크게 페이와 대출, 보험으로 나뉜다. 페이만 놓고 보면 맞다. 우리나라에서 신용카드 위상은 견고하다. 하지만 최근 젊은 층들이 신용카드 외 다른 결제를 선호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출과 보험은 확장해야 할 영역이 넘쳐난다. 예를 들어 가전 제조사가 구매 이력을 토대로 고객 신용을 평가해 할부 이자율을 정할 수 있다. 또한 고객의 사용 패턴을 분석해 보증 기간, 보증 비용 등을 책정할 수 있다. 전통적인 신용평가가 아니더라도 개인 신용을 체크할 방법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보험은 테슬라 보험이 좋은 사례다. 비금융사의 데이터로 보험료를 고객마다 달리 책정하는 시대가 열린다. 그야말로 ‘빅블러(Big Blur)’가 벌어지고 있다. 산업 간 경계가 급속하게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임베디드 금융’은 계속 진화하는 중이다.
Q. 임베디드 금융의 단계를 나눠본다면.
A. 인터넷 여행 사이트에서 항공권을 구매한다고 치자. 플랫폼은 고객이 언제 어디로 가는 정보는 알았으니 동일한 수준의 여행자보험을 권할 것이다. 이는 1단계다. 2단계에서는 고객 데이터가 추가된다. 여행지에서 사고가 많았던 고객에게는 높은 보험료를, 그렇지 않은 고객에게는 낮은 보험료를 부과한다. 기업은 비용 절감에 도움 되고, 고객 입장에서도 선의의 피해자가 줄어든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완전히 특화한 서비스를 내는 단계라면 3단계로 봐야 할 것 같다.
Q. 기업들은 어떤 전략을 짜야 하나.
A. 금융사라면 전통적인 금융을 넘어설 계기로 삼아야 한다. 금융사 자체 역량으로 닿기 힘든 곳까지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비즈니스에 머무르는 금융사는 도태될 것이다. 특히 중소형 금융사에 기회의 문이 열린다. 비금융 플랫폼 업체들은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페이’가 잘된 유통 플랫폼이 그렇지 않은 플랫폼보다 유리하다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고객 데이터를 더 면밀히 모으고 분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Q. 결국 ‘임베디드 금융’도 비용 증가 요인이 아닌가.
A.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한 이후 ‘고객획득비용(CAC·Customer Acquisition Cost)’이 크게 늘었다. ‘출혈 경쟁’도 심해졌다. 같은 비용을 쓴다면 효율적인 비용 지출이 필요하다. ‘임베디드 금융’은 고객의 ‘체리피킹(Cherry Picking·유리한 것만 찾는 행위)’을 줄이고 충성도를 높이는 좋은 수단이 된다. 누구라도 ‘비대면’의 시대가 왔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면이라는 경험 자체가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VVIP 마케팅을 제외하면, 금융사도 비대면 디지털 환경에 맞춰 변해야 한다.
Q. 금융사가 보수적이라 디지털 변화에 느린 것 같다.
A. 금융은 내수, 규제, 과점 사업이다. 해외 경쟁자가 없고, 규제의 틀 안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집중하고, 플레이어가 많지 않다. 어느 모로 보나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을 보이기가 쉽다. 하지만 과거에 안 했다고 미래에도 안 하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 고객 서비스는 ‘매끄럽게’ 진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