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위클리비즈

“이것 없인 위대한 기업 될수없다… 한국, 더 분발해야”

“이것 없인 위대한 기업 될수없다… 한국, 더 분발해야”

베인앤드컴퍼니 전략·마케팅 다르시 다넬 총괄대표 인터뷰

  • 2022년11월17일
  • 읽기 소요시간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이것 없인 위대한 기업 될수없다… 한국, 더 분발해야”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안상현 기자] “위대한 기업을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의 다르시 다넬 고객전략 및 마케팅 부문 글로벌 총괄 대표는 ‘고객 사랑 전도사’로 불린다. 기업인들을 만날 때마다 “재무 성과만 추구하는 기업보다 고객에게 사랑받는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더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하기 때문이다.

 

물론 고객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되길 원치 않는 기업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하지만 다른 어젠다에 집중하다 보면 고객 사랑이란 추상적 목표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고객에게 사랑받으려 해도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불확실하다. 고객 사랑은 왜 중요하고,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WEEKLY BIZ가 ‘목적으로 승리하는 기업(Winning on Purpose)’ 출간 기념으로 최근 한국을 찾은 다넬 대표를 만나 물었다.

◇재무제표보다 고객 사랑이 수익성 높아

다넬 대표는 NPS(순추천 고객 지수)라는 지표를 통해 고객 만족을 계량화할 수 있게 만든 주인공 중 한 명이다. NPS는 보통 고객들에게 해당 기업이나 서비스를 지인에게 추천할 의향이 있는지 0~10점 척도로 묻는 방식으로 집계된다. 0~6점은 비추천 고객, 7~8점은 중립 고객, 9~10점은 추천 고객으로 분류하고 추천 고객 비율에서 비추천 고객 비율을 뺀 값을 점수로 매긴다.

NPS가 도입되기 전엔 기업들이 내세우는 고객 만족 또는 고객 사랑은 입에 발린 소리로 치부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NPS가 만들어지고 유행처럼 번져나가면서 고객 서비스 품질은 경영 목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테슬라·넷플릭스·GE 등 포천 1000대 기업 중 3분 2 이상이 NPS를 경영 성과 지표로 활용 중이다.

하지만 고객 만족이 재무제표보다 우선하느냐에 대해선 여전히 많은 기업이 회의적이다. 베인이 작년 7월 글로벌 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기업의 주요 목적이 ‘고객이 얻는 가치를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답한 경영자는 18%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다넬 대표는 “기업은 고객을 행복하게 만듦으로써 투자자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며 “이에 반하는 전략은 예외 없이 실패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무 성과가 우수한 기업과 고객 만족도가 높은 기업의 장기 성과를 비교·분석해보고 이런 확신을 더욱 굳히게 됐다고 했다. 2002년 출간된 경영학 분야 스테디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저자 짐 콜린스는 주가 상승률이 시장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11기업을 위대한 기업으로 꼽았다. 애벗·서킷시티·패니메이·질레트·킴벌리클락 등이다. 반면 프레드 라이켈트 베인 시니어 고문 파트너는 2012년 펴낸 ‘고객이 열광하는 회사의 비밀’에서 아마존·아메리칸익스프레스·애플·칙필에이·코스트코 등을 NPS 선도 기업으로 꼽았다.

책에 소개된 이후 10년간 두 그룹의 누적 총주주수익률(TSR·주가 등락분과 배당금을 합친 것)을 비교해 보니, 짐 콜린스가 선정한 기업들은 전체 상장사 TSR 중간값의 40%에 그쳤다. 반면 프레드 라이켈트가 선정한 기업들은 510%에 달했다. 다넬 대표는 “NPS 선도 기업 중 성과가 하락한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며 “위대한 목적(고객 사랑)을 품지 않은 기업은 위대해질 수 없다”고 했다.

◇反고객 정책·관행 폐기해야

다넬 대표는 “고객 사랑을 실천하는 기업들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세밀한 부분까지 챙기며 고객의 추천 의향을 극대화한다”고 말했다. 그가 사례로 든 기업은 미국 신용카드 회사인 디스커버 파이낸셜이다. 대부분 카드사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고객 센터를 인도나 필리핀 같은 제3국에 아웃소싱하는 것과 반대로 이 회사는 고객 서비스 센터 직원을 100% 내국인으로 운영한다. 고객과 하는 상호 작용과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카드사의 주 수익원인 연회비와 마일리지 포인트 소멸 시효도 없앴다. 그런데도 디스커버는 2011~2020년 JP모건체이스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캐피털 원, 시티그룹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업계 최고 총주주수익률을 기록했다. 고객 서비스를 바탕으로 충성 고객을 늘린 결과다.

이른바 ‘탈(脫)통신사 혁명’으로 업계 꼴찌에서 선두로 치고 올라온 통신사 티모바일 역시 대표적 NPS 실천 기업으로 꼽힌다. 2012년 임명된 존 레기어 CEO(최고경영자)는 “어리석고, 오만하고, 망가져 있는 업계를 바로잡겠다”며 고객 중심 전략을 천명했다. 이어 요금제 간소화, 세금과 수수료를 포함한 명확한 요금 고지, 약정 요금제 및 국제 전화 로밍비 폐지, 미사용 데이터 자동 이월 등 고객 친화적인 정책을 대거 도입했다. 그러자 티모바일 고객 수는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14%씩 늘어났고, NPS 점수와 총주주수익률 모두 업계 1위를 달성했다. 다넬 대표는 “통신 산업은 업계 전체가 (고객을 착취하는) 나쁜 이익에 중독돼 있었다”며 “티모바일은 교묘한 방식으로 매출을 얻는 전략을 꾸준히 제거했다”고 설명했다.

◇구호 대신 시스템 만들어라

다넬 대표는 “NPS를 도입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기업이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NPS가 고객 사랑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단순 목표가 된 경우다. 가령, 회사가 기계적인 NPS 점수 달성만 강조하면 영업 사원들은 서비스 질 향상보다 설문조사 때 10점 평가를 애걸하는 데 힘을 쏟게 되고, 이는 오히려 고객의 불쾌한 경험으로 이어진다. 다넬 대표는 이를 두고 “NPS를 단순 성과 측정 점수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말고 기업 업무 전반에 적용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체계화된 NPS 시스템은 ▶소비자 불만이 제기됐을 때 적시에 적절히 대응하는 일선 체계(inner loop) ▶왜 불만이 생겼는지 파악하고 같은 일이 반복하지 않도록 대응책을 마련하는 중간 체계(middle loop) ▶회사 정책과 사업 모델로 승화시키는 외부 체계(outer loop)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다넬 대표는 “많은 기업이 이런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등한시한 채 NPS를 그저 구호처럼 외치는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체계화된 시스템을 바탕으로 고객 만족도를 높인 기업으로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을 꼽았다.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2005년 이윤 악화 우려에도 연회비 79달러를 내면 무제한 무료 배송과 2일 내 배송을 보장하는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후 고객 피드백을 적극 수용하며 배송 시스템을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다넬 대표는 “집에 택배 상자가 쌓이는 게 싫다는 고객 불만이 접수되자 아마존은 주간 구매 품목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프라임 데이’를 설정하는 등 진화를 멈추지 않았다”며 “고객 사랑 전략이야말로 아마존이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했다.

다넬 대표는 한국 기업이 더 분발해야 한다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는 NPS 선도 기업이 없는가’ 하는 질문에 그는 “당장 떠오르는 기업이 없어 안타깝다”며 “많은 한국 기업이 ‘고객 만족’을 외치는 건 한국 고객 대다수가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는 반증 아닐까 싶다”고 했다.

조선일보 위클리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