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매일경제=윤성원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 글로벌 금융시장의 최신 트렌드 중 하나는 사모펀드(PE) 대중화다. 부동산, 비상장주식, 인프라, 복잡한 구조의 채권 등 공모(公募) 시장 밖 '대체자산(alternative asset)'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는 그동안 기관투자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이는 통계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전 세계 295조달러 규모 투자 및 펀드 시장의 절반은 개인고객의 투자금이지만, 대체투자 등으로 이뤄진 사모펀드 시장에서 개인고객의 투자금 비중은 16%에 불과하다.
사모펀드 입장에서 개인고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엔 걸림돌이 적지 않다.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투자 기간이다. 상당수 기관투자자는 장기 투자에 익숙한 반면, 개인투자자는 시장의 출렁임을 버티지 못하거나 개인 사정에 따라 단기간 내 자금 인출을 요구하는 경우가 잦은 편이다. 비상장기업 등 당장 현금화가 불가능한 자산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입장에선, 대규모 고객 자금 인출 요구가 있을 때 이에 대응할 유동성(자금) 마련에 애를 먹게 된다. 쉽게 말해 대형 이벤트 발생 시 기관투자자는 전화 몇 통만 돌려도 자금 이탈을 막을 수 있으나, 수백~수천 명의 개인고객은 위기 대응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형 사모펀드들은 최근 되레 개인(리테일) 고객층의 성장세를 눈여겨보고 있다. 블랙스톤은 향후 개인고객의 사모펀드 투자금액이 2.5배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고, KKR은 향후 수년 내 신규 유치 자금의 30~50%가 개인고객 자금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베인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사모펀드 시장에서 기관투자 자금은 22조달러에서 47조달러로 연평균 8% 늘어날 것으로 추산되는 한편, 개인고객 자금은 4조달러에서 13조달러로 연평균 12%씩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모펀드 수수료가 ETF, 액티브 펀드 등 개인투자자가 익숙한 펀드보다 훨씬 높은 편인데, 어떤 요소가 개인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것일까.
무엇보다도 공모 시장의 매력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점이 개인고객의 사모펀드 시장 진입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성장세가 가파른 일부 기업들이 규제 등 복합적인 이유로 상장을 기피하고 있고, 최근 몇 년간 상장 회사 수는 점차 감소 추세다. 그 결과, S&P500 등 미국 증시 간판 주가지수는 일부 대형 테크 기업의 주가 출렁임에 큰 영향을 받는 구조가 됐다. 이런 와중에 대체투자의 매력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금융 규제가 공모 시장 펀드보다 훨씬 까다롭다는 점도 사모펀드의 대중화에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2020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사모펀드 공인 투자자(accredited investor)의 범위를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개인투자자'로 넓히는 등 전반적인 규제 환경도 사모펀드 대중화에 유리한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최근엔 앞서 언급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핀테크 기업과 혁신 금융 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독일의 문페어(Moonfare)와 미국의 아이캐피털(iCapital)은 개인고객의 투자 자금을 플랫폼으로 모아 투자 대상과 연결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대형 금융회사들이 금융 상품 혁신과 전문인력 확충으로 개인고객을 잡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아폴로는 아예 대체투자 상품으로 S&P 코어 주식 투자를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블랙스톤은 약 300명의 영업사원을 한데 모아 대체투자 전문인력으로 양성하고 있다.
물론, 고객과 금융회사 모두 사모펀드 시장에 대해 아직 더 많이 공부해야 하는 단계다. 그러나 기민한 금융인들은 벌써부터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 분야 선두 주자들은 개인고객이 사모펀드 시장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데 강한 신념을 지니고 있다. 몇 년 후면 치열한 경쟁의 승자가 조금씩 보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