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위클리비즈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윤성원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 시가총액이 4000조원에 가까웠던 세계 가상 화폐 시장이 추락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붕괴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투자심리 과열부터 투자원칙 부재까지 닷컴 버블 붕괴와 닮은 점이 여럿이다.
금융권은 가상 화폐의 가치 변동과 이를 가능하게 한 ‘웹 3.0′의 가능성을 구분해서 보고 있다. 투자자들은 웹 3.0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지속적 유망 투자처로 고려 중이며, 베인앤드컴퍼니 집계에 따르면, 웹 3.0 관련 스타트업에 지금까지 약 940억달러(약 125조원)의 투자금이 몰린 것으로 추산된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투자자들은 웹 3.0을 전통 기업의 수익 창출 방식을 변화시킬 ‘창조적 파괴’의 원천으로도 바라본다. 블록체인, 스마트 계약, 디파이(DeFi•탈중앙화금융) 등을 아우르는 웹 3.0은 사용자가 데이터 소유권을 갖고 공개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누구나 다양한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몇 년 전까지 웹 3.0은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일부 벤처 투자자 정도만 열성적으로 언급하는 분야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 상당수 운용사가 파급 효과를 면밀하게 분석 중이다.
둘째, 금융권 내부에서도 웹 3.0 기술로 인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예를 들어 작년 11월 DBS은행, JP모건, SBI디지털에셋홀딩스 등은 싱가포르통화청과 함께 업계 최초로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서 자산 토큰화와 디파이를 활용해 성공적으로 금융 거래를 실행했다. 외환뿐 아니라 국채도 거래했다. 기존 서비스 효율을 대폭 높이기 위해서다.
골드만삭스는 토큰 플랫폼을 활용해 1억유로 규모의 채권 판매 거래를 성공적으로 집행해 주목받았다. 통상적인 절차대로라면 닷새가 걸릴 거래를 불과 60초 만에 끝냈다. 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기술을 피하지 않고 부딪쳐 가며 경험하고 가능성을 탐색한 것이다.
셋째, 웹 3.0의 적용 범위는 그 어떤 기술보다 광범위하다. 금융권 밖에서도 웹 3.0 도입 시도는 활발하다. IBM의 물류 정보 서비스는 기업의 물류망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페덱스, UPS, 델타항공 등 상당수 운수 및 물류 회사도 웹 3.0 기술로 생산성을 높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웹 3.0은 향후 10년간 거의 모든 산업계를 관통할 키워드다. 일하는 방식과 비즈니스 모델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가상 화폐 폭락 이후에도 많은 투자자와 기업들이 막대한 기회비용을 감수하고 웹 3.0 기술에 미래를 걸고 있다. 아직 태동기에 불과하기에, 현시점에서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다만, 20년 전의 교훈은 강조하고 싶다. 닷컴 버블 이후 비관론이 가득한 경기 침체의 잔해 속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을 찾아낸 자가 결국 큰 이득을 거뒀다. 웹 3.0을 둘러싼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