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매일경제=정유정 기자] 아시아 지역의 소비재 기업이 인수·합병(M&A)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며 전 세계 시장에서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베인)에 따르면 2012~2021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상위 50개 소비재 기업의 국내 매출 연평균 성장률은 3%인 데 비해 해외 매출 성장률은 9%로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 대비 3배 빠른 성장률을 보였다.
같은 기간 이들 기업의 상위 50곳 중 19곳이 해외 확장을 시도했는데 이 가운데 68%는 M&A를 활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M&A는 어떻게 소비재 기업의 성장 동력이 되었을까. 다음은 데이비드 제너 베인 아시아·태평양 소비재 부문 리더와의 일문일답.
―아태지역 소비재 기업들이 해외 사업을 통해 성장을 주도했다. 그 이유는.
▷베인이 아시아에 본사를 둔 50대 소비재 기업의 2012~2021년 매출 성장률을 파악해보니 해외 시장 매출이 자국 시장 대비 3배 빠르게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50대 소비재 기업 중 일본, 중국 기업이 대다수를 차지했으나, CJ제일제당, 아모레퍼시픽, 대상 등 한국 기업도 3곳 포함됐다. 세 기업 모두 해외 시장에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
이번 분석은 해외 성장을 위해 M&A를 활용하는 기업이 M&A를 활용하지 않는 기업 대비 훨씬 빠르게 성장한다는 시사점을 준다. 회사가 자력으로 해외 시장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화적 차이와 규제 등에 따라 자국에서 인기 많은 브랜드가 해외에서는 큰 호응을 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해외 시장 성장률이 본국 대비 3배나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기업 관점에서 보면 주력 시장인 본국 시장이 성숙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추가 성장 여력이 부족하다.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해외로 가야 한다. 한국 소비재 기업 다수도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다. 자국 시장은 성숙했고 경쟁 강도도 치열하므로, 전반적 성장을 위해서는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어떤 기업을 인수했나.
▷CJ제일제당이 최근 미국 냉동식품 업체 슈완스를 인수했다. 미국이라는 신시장에서 빠르게 사업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단행한 대규모 M&A다. 아모레퍼시픽은 미국 소규모 브랜드 타타 하퍼를 인수했다. 그 외에도 다른 뷰티 브랜드들의 소수 지분 인수를 적극 진행했다. 이 경우는 자사의 제품 라인을 보강하여 특정 소비자 계층에 더욱 주력하기 위한 M&A다.
―일본 기업이나 중국 기업 사례도 있나.
▷중국의 선도적 유제품 기업 멍뉴유업을 들 수 있다. 멍뉴유업은 최근 호주의 유아용 분유 업체 벨라미를 인수했다. 해외 시장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다. 호주 브랜드를 이용해 자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또 다른 사례는 일본 맥주 업체 아사히가 호주 시장 내 사업 규모 확장을 위해 호주 맥주 업체 칼턴앤드유나이티드브루어리(CUB)를 인수한 건이다. 아사히의 경쟁사인 기린은 건강과학 사업 육성을 위해 호주의 비타민·건강식품 업체 블랙모어스를 인수했다.
―한국 기업의 해외 기업 M&A가 효과적일까.
▷한국에서 어느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는 기업들에 해외 확장은 굉장히 중요한 어젠다다. 특히 지금은 한국 기업이 글로벌화하기에 여건이 매우 좋은 시점이다. 소비재 영역에서 현재 세대교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10·20대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기업의 제품·브랜드에 대한 선호도, 또는 그것을 테스트하고 사용해 보고자 하는 의향이 높다. 현재 해외에서 반응이 좋은 만두와 라면 등의 제품은 10·20대 소비자를 공략한 마케팅을 통해 크게 성공한 케이스다. 또 디지털 기술이 확산하면서 지난 10년 전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게 글로벌 시장에 한국 기업을 알릴 수 있다.
―미래 소비자 트렌드는 어떠한가.
▷최근에 베인에서 '새로운 소비자 경제'라는 조사를 실시해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사업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8대 소비자 트렌드를 파악해 분석했다. 8대 트렌드 중 1~2개만 설명해 보겠다. 먼저, '황금 또는 노인(Gold or Old)' 트렌드가 있다. 소비자의 기대 수명이 점차 길어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노년층의 삶을 보면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뉜다. 첫째, 여전히 건강하고 활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노년층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교육, 여행 등의 새로운 사업 기회가 발생한다. 주로 신체가 건강한 70·80대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며, 이들을 '황금'이라고 한다. 둘째, 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요양, 돌봄 서비스 등의 사업 기회가 발생한다. 시니어 소비자는 향후 완전히 주력 계층이 될 것이고, 기업은 이에 맞는 사업 계획을 세워야 한다.
또 다른 거대 트렌드는 '초인(Superhuman)' 트렌드다. 신체의 건강, 업무 성과, 운동, 심신의 안정 등을 매우 중요시하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개인화된 건강 솔루션 등의 신사업 기회가 존재한다. 건강을 더욱 증진하고 활동성을 강화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 개인화된 영양 프로그램 사업 등이 여기 포함된다.
또 다른 트렌드는 인구 이동 트렌드다. 향후 10~20년간 상당한 수준의 인구 이동이 예상된다. 다른 국가로 이주하는 경우가 있고, 국가 내에서도 도심에서 새로운 허브로 이동하는 트렌드가 발생할 것이다. 굳이 전통적인 도심에 살지 않으면서도 도시의 장점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중심지가 등장할 것이며, 이러한 이동·이주 패턴을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가 발생할 것이다.
―소비재 기업은 이 같은 트렌드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베인은 주주뿐만 아니라 고객사인 유통업체, 임직원, 지역사회, 자연환경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가치를 창출한 소비재 기업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해당 기업들이 잘하고 있는 5가지 행동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른 소비재 기업들도 벤치마킹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첫째, 소비자 수요에 주력해 타사 대비 우월한 제품·서비스를 창출한다. 소비자가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이러한 니즈를 타사 대비 우월한 방식으로 충족시키는 제품을 만드는 혁신이 필요하다.
검색·리뷰·반품 때 고객 채널 달라 옴니채널로 고객 소비여정 파악을
둘째,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육성시켜야 한다고 판단되는 소수 역량에 주력하고, 나머지는 단순화하라. 소비재 업체의 경우 혁신, 마케팅, 영업, 공급망 관련 역량이 여기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역량이 뛰어난 소비재 업체가 가장 성공적으로 사업을 운영한다.
셋째, 탄소중립 달성 방안을 설계하라. 그저 탄소중립 달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넷제로 외부 효과'에 도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이 탄소 배출량 측면에서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소비자의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 진정한 넷제로 외부 효과 달성이라 할 수 없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외부 불경제'라고 말한다. 베인은 고객사를 대상으로 넷제로 외부 효과를 달성할 것을 자문하고 있다. 고객사 제품이 탄소 배출량은 적어도 자연환경이나 지역사회, 건강 등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넷째, 속도감 있고 기업가정신을 장려하는 운영모델 또는 조직문화를 조성하라. 대형 소비재 업체 대다수는 전통적인 경영 스타일이나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그 결과 변화 추진이 느릴 수밖에 없다. 이들 기업은 사업모델과 문화를 변화시켜, 훨씬 더 애자일하고 결단력 있는 모습으로 변모해야 한다.
다섯째, 기술이 소비재 업종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비해야 한다. 미디어, 리테일 업종의 경우 이미 기술로 인해 와해적 변화를 겪었다. 소비재 업종은 아직 진행형이다. 소비재 제조업체 또는 브랜드는 자사 사업의 기술적 전환에 대비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소비자 트렌드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다수 시장에서 온라인 쇼핑이 급증했다. 수많은 소비자는 예전에 적극 활용하지 않던 온라인 채널을 사용하는 등 장기간 고수해 온 쇼핑 방식을 바꾸게 됐다. 또 공급 업체가 소비자의 쇼핑 경험을 보다 매끄럽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최근 오프라인 유통사들이 자사 사업을 대폭 개편했다. 오프라인 매장을 줄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된 형태인 옴니채널 쇼핑 경험을 개선하고 있다.
이제 소비재 업체들은 매우 명확한 온라인 채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중국, 한국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한국의 이커머스 침투율은 30~40%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상위에 속한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이커머스 사업을 하면서, 세계 시장에서까지 잘하겠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온라인 채널 전략을 소개해 달라.
▷현재 소비재 업체들은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쇼핑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수많은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소비재 업체들은 과거에는 소비자들을 그룹으로 묶어 분류했으나 이제는 소비자 개개인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자 노력한다. 구체적으로 소비재 기업들은 과거에 소비자 개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소비자들과 상호작용하기 위해 유통사 채널에 의존했다. 또 대다수 기업이 소비자를 청년·노년·남성·여성 등으로 나눠 전략을 짰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을 통해 소비자 개인과 상호작용을 하고 이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브랜드를 이용하는 고객의 경험을 맞춤화하게 된 셈이다. 대규모의 개인화가 소비재 기업에 새롭게 요구되는 역량이다.
두 번째로 필요한 신규 역량은 대규모의 옴니채널이다. 채널뿐만 아니라 고객의 여정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전통적으로는 소비재 기업이 대형마트, 편의점, 백화점 등 판매 채널을 위주로 생각했다. 그러나 소비자는 이 채널들을 모두 방문하고, 온라인을 통해서도 브랜드들과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소비재 기업들은 이제 소비자가 브랜드 정보를 검색할 때, 리뷰를 쓰려고 할 때, 고객 경험을 공유하고자 할 때, 반품을 하고자 할 때 등 각종 상호작용 상황에서, 각기 상이한 판매 채널을 어떻게 넘나들고 있는지 파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소비재 기업들은 이러한 여정을 이해해야 한다.
세 번째로 필요한 신규 역량은 대규모의 실험이다. 과거에는 소비재 기업들이 제품 혁신을 위해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시장 테스트를 조금 한 후에 바로 제품을 출시했다. 마케팅 캠페인을 하기 위해서는 광고사들과 강도 높은 협업을 했다. 그러나 최근 성공적인 소비재 기업들을 보면, 대규모 실험 프로그램을 통해 과거 대비 훨씬 고도화된 방식으로 제품 혁신과 마케팅 메시지를 테스트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온라인 미디어를 사용해 마케팅 메시지를 100개 정도 생성한 후, 어떤 색상이나 그래픽이 타깃 소비자를 대상으로 가장 잘 어필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경기가 좋지 않다. 전반적으로 모든 수요가 둔화된 상황에서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가.
▷첫째, 글로벌 경제는 아직 성장하고 있다. 모든 국가에서 경제 성장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성장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매우 더디게 성장하고 있으나, 해외 시장에서는 여전히 성장 기회가 남아 있다. 둘째, 한국과 같은 성숙도가 높은 경제에서 성장 기회를 이야기할 때,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프리미엄화'가 중요하다. 한국이나 호주와 같은 선진 경제국에서 성장의 주요 수단 중 하나는 기존 대비 가격대가 높은 신상품을 출시하는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소비자는 트렌디하다고 판단되거나 타 제품 대비 낫다고 생각하는 제품과 브랜드에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할 의향이 높다. 커피 체인도 소비자가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커피를 사도록 하기 위해 혁신하고 있다. 예전에는 커피 메뉴도 2~3개뿐이었고 가격도 3~4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커피 체인만 봐도, 메뉴가 매우 다양해지고 평균 가격이 크게 상승한 점을 알 수 있다. 소비자가 기꺼이 프리미엄을 지불하게 하는 새로운 제품이 다양하게 출시됐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인수·합병(M&A)을 통해 큰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금리가 높은 상황인데 재무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는가.
▷그럴 수 있다. 일부 한국 기업은 부채가 많고, 고금리 상황에서 M&A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현금이 풍부해 M&A 기회를 더욱 효과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기업들도 있다. 글로벌 소비재 선도사들은 영업이익률이 10% 중반인데, 한국의 기업 중 몇몇 기업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10% 중반인 기업은 몇 년 동안 영업이익을 누적시켜 투자 재원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은 영업이익률을 높여 자금을 자체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기업의 지속가능성 역할과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소비재 기업에 지속가능성이 왜 중요한가.
▷베인은 아시아 소비재 업종의 소비자가 지속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규모 리서치를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신경 쓰는 소비자 비중은 북미·유럽 소비자 비중과 거의 동일한데, 건강에 신경 쓰는 소비자 비중은 북미·유럽 대비 훨씬 높았다. 한국은 소비자의 55%가 건강에 신경 쓰는 소비자로 분류돼, 아시아 평균인 51%보다 높았고 유럽 평균인 약 30% 대비 훨씬 높았다. 건강에 신경 쓴다는 점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된다. 한국 소비자 대다수는 지속가능성과 건강이 매우 중요한 브랜드 선정 기준이라고 대답했다. 단,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제품의 실제 시장점유율은 낮은 편이다. 소비자가 건강에 대해 신경 쓴다고 말하지만 건강한 제품을 적극 구매하진 않는다는 의미이다. 소비재 업체들의 과제는 소비자의 이 같은 차이를 해소하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해야 한다.
가격이 문제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가격이 문제라고 꼽은 소비자는 10~20%밖에 되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지속가능성 제품 구색이 충분하지 않고, 어떤 제품이 진짜 지속가능한 제품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소비재 기업과 유통사의 과제는 제품 구색을 충분히 제공하고, 소비자가 제품을 불편함 없이 매대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해당 제품의 건강·지속가능성을 일관성 있게, 쉬운 방식으로 계속 커뮤니케이션하는 동시에, 적절한 가격으로 제공해야 한다.
데이비드 제너 베인앤드컴퍼니 아태지역 소비재 부문 리더
제너 리더는 전략, 산업재 부문의 리더도 맡고 있다. 1996년 베인에 입사한 후 식음료·유통 기업의 효과적인 위기 대응을 지원했으며 전략,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고객 전략·마케팅, 성과 개선, 합병 후 통합, 조직 분야의 심도 있는 전문성을 기반으로 다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호주 브란덴부르크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MBA 과정을 이수했고, 컬럼비아대 국제공공정책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