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비즈니스리뷰
Article at a Glance
2026년은 팬데믹 이후 본격화한 탈세계화, 인구절벽과 불평등 심화로 인한 구조적 불안정성, AI 혁신 본격화라는 세 가지 대전환이 동시에 맞물리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이 변화는 코리아 피크아웃(peak-out) 우려를 현실로 만들 수도, 새로운 성장 궤도를 열어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위기 담론의 반복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전략 설계다. 국가는 산업 포트폴리오와 인재 전략, 사회·경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기업은 공급망 리스크 관리, AI 기반 생산성 혁신, 사회적 신뢰 자산 축적에 나서야 한다. 지금의 선택과 행동이 한국 경제의 피크아웃 우려를 지우고 지속 성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Business Trend Insight
코리아 피크아웃 (Korea Peakout)
한국 경제가 성장 고점에서 하락 국면으로 전환할 위험을 뜻하는 개념. 팬데믹 이후 일시적 회복 동력이 소진되는 시점에 탈세계화·인구 절벽·AI 혁신이라는 세 가지 구조적 변화가 동시에 본격화되면서 제기됨.
1. 무대 위에 놓인 세 자루의 총
“연극 1막에 총이 등장했다면 2막이나 3막에는 반드시 발사돼야 한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말이다. 2025년의 세계 무대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무대 위엔 세 자루의 총이 놓여 있다. 각각 탈세계화, 구조적 불안정성, AI 혁신이라는 총이다. 지금 와서 갑자기 등장한 것들은 아니다. 시점을 못 박을 순 없지만 기나긴 역사를 거치며 무대 위에 차츰 모습을 갖춰간 총들이다. 우리가 때론 간과했고, 애써 외면했지만 말이다. 체호프의 말처럼 등장한 총은 반드시 발사된다. 이미 발사된 총도 있고 머지않은 시점에 방아쇠가 완전히 당겨질 총도 있다. 그 발포의 결과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발사된 총탄이 한국 경제를 꿰뚫어 빈사 상태로 몰아갈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새 시대를 여는 촉매 역할을 할 수도 있다. 2026년의 핵심 비즈니스 트렌드로 ‘코리아 피크아웃(Korea Peak-out)’이라는 키워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내년은 한국 경제가 피크아웃 의제를 정면으로 마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 경제의 일시적 회복 국면을 이끌었던 재정·금융 부양책과 수출 호황 효과가 사실상 소진되는 시점이면서 동시에 앞서 언급한 세 자루의 총이 잇달아 불을 뿜으며 거대한 전환을 강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를 팬데믹 시점부터 줌 인(Zoom in)해보자. K방역, 적극적 재정 및 금융 정책, 수출 증대를 통해 비교적 빠르게 충격을 회복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기초체력은 분명 존재하지만 활력을 계속 유지할 근본적인 기반이 부족하다. 인구 감소, 경직된 제도와 부진한 혁신, 계층과 세대에 걸친 사회적 갈등 등의 문제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2년 차를 맞아 더욱 강력해질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 기조, 지난해를 기점으로 결국 20%를 넘어선 국내 고령화율과 그에 따른 사회적·재정적 압박, 글로벌 기업들의 대규모 AI 상용화가 하나의 파고로 합쳐지는 시기다. 자칫하면 한국 경제가 고점 이후 내리막에 들어서는 피크아웃의 길로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전환의 파고를 전략적으로 잘 헤쳐가면 위기는 기회가 된다. 관성에 기댄 낡은 성장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궤도를 설계할 수 있다. 2026년은 한국 경제의 체질을 재설계할 대전환의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위기론의 반복이 아니다. 실행 가능한 해법과 선택이다. 우리 경제와 기업이 대전환기를 돌파하고 계속 성장하기 위한 방법을 살펴본다.
2. 글로벌 대전환의 첫 번째 축, 탈세계화
역사 속 복선, 중국의 부상
이미 발사된 총이 있다. 글로벌 대전환의 첫 번째 축, 탈세계화다. 미중 패권 경쟁에서 비롯한 양국 간 무역 갈등이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전 세계적 상호 관세 부과 및 WTO 규범 약화, 이로 인한 리쇼어링과 경제 블록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순한 무역 분쟁을 넘어선 새로운 세계 질서 재편의 단초다. 탈세계화가 본격화하기까지 세계 경제 무대에 수십 년간 깔려 있던 복선은 바로 중국의 부상이다.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40년 넘게 연평균 9~10% 수준의 고성장을 이어왔고 2010년에는 일본을 제치며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개혁 이전까지 약 2%대에 머물던 글로벌 GDP 내 비중은 현재 17% 안팎까지 확대됐다. 이는 단순히 한 국가의 경제 성장 스토리가 아니라 역사의 무대에 놓인 거대한 복선이었다. 중국의 부상은 글로벌 기업들에 저임금 노동력과 거대 시장을 제공하며 세계화의 엔진이 됐지만 동시에 미국의 제조 경쟁력 쇠퇴와 유관 생태계 전반의 약화를 초래하면서 미국 패권에 대한 구조적 도전으로 이어졌다.

당겨진 탈세계화의 방아쇠
2025년 마침내 탈세계화라는 총이 불을 뿜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EU를 포함한 동맹국에도 관세를 적용하며 무역 블록화 전략을 택했다. WTO 중심의 자유무역 질서는 약화됐고 세계 무역 환경은 안보·정치적 동맹을 중심으로 분절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안보·정치 동맹하에 있었던 한국은 매우 복잡한 셈법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로 GDP 대비 무역 비중이 70%를 웃돈다. 수출 중심 구조 덕에 고도성장을 이뤘지만 역설적으로 탈세계화가 단순한 무역 둔화를 넘어 성장 모델 자체를 뒤흔드는 구조적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업종 및 업태별로 리스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반도체·배터리: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플레이어이다. 한국 경제의 중추가 되는 산업이지만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샌드위치 상태에 놓여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 자동차·배터리: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관세 장벽, 유럽의 탄소 규제 등으로 해외 생산 기지 재편이 불가피하다.
· 중소기업: 대기업과 달리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할 역량과 협상력이 부족하다. 관세 충격을 정면으로 받을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2025년 5월 말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대폭 낮췄다. KDI도 ‘무역 환경 불확실성’을 한국 성장의 주요 하방 리스크로 진단했다.
기업과 국가가 던져야 할 질문
탈세계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추세다. 따라서 한국 정부와 기업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 공급망을 어떻게 다변화할 것인가? 특정 국가와 거대 거점의 의존도를 낮추고 동남아·인도·중남미는 물론 미국·유럽까지 생산·조달 네트워크를 분산해야 한다. 단순 생산 이전이 아니라 R&D와 서비스까지 포함한 밸류체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높아진 비용과 낮아진 효율성을 상쇄하기 위한 고부가가치화와 기술 혁신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 무역 리스크를 어떻게 내재화할 것인가? 관세·환율·물류 변동은 더 이상 ‘예외 변수’가 아니라 전략 설계의 전체 조건이다. 따라서 실시간 모니터링과 시나리오 기반 경영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금융적 헤징을 넘어 가격 정책, 계약 조건, 공급망 운영까지 리스크 내성을 길러야 한다.
· 제품 수출에 의존한 성장 모델을 탈피하고 제품·서비스 결합형 고부가 산업으로 전환할 방법은 무엇인가? 단순 하드웨어 제품 수출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 데이터, 서비스형 비즈니스 모델(XaaS)과 결합해야 한다. 한국의 제조 강점에 AI와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융합해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제품·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고부가 차별화 제품은 가격 전가력이 높아 관세 충격에 강하다. 나아가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와 내수 활성화까지 창출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3. 글로벌 대전환의 두번째 축, 구조적 불안정성
역사 속 복선, 인구와 불평등의 균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은 저서 『이스탄불』에서 전후 세대가 겪은 상반된 정서와 도시 전체에 깃드는 집단적 우울에 대해서 묘사한다. 특히 전쟁을 겪은 1세대, 재건기를 살아낸 2세대, 정체성과 무력감을 경험하는 후세대를 대비한다. 1세대는 전쟁과 가난 속에서 생존했고, 2세대는 재건과 성장의 시기에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의 혜택을 누렸다. 그 자녀 세대에 이르면 더 이상 생명을 위협하는 절대적 가난은 없다. 하지만 고착화한 불평등과 상실된 기회 속에서 무력감을 경험하게 된다. 한국 사회도 유사한 궤적을 밟아왔다. 압축성장과 산업화의 성취는 베이비붐과 X세대의 원동력이었지만 오늘날 젊은 세대는 인구절벽과 기회의 양극화라는 구조적 불안 속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이렇게 역사와 세대를 거쳐 축적된 균열이 언젠가부터 무대 위에 걸려 있던 ‘구조적 불안정성’이라는 총이다. 복선은 이미 깔려 있었다. 인구구조와 불평등이라는 두 가지 대표적 양상으로 오래전부터 빌드업(build-up) 됐다.
· 인구 감소 – 눈앞의 절벽
한국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0.7명대)과 급속한 고령화 속에서 경제의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미 2020년대부터 생산가능인구는 감소세로 전환했고 2025년에는 고령인구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저출산 위기 타파의 해법을 찾지 못할 경우 2035년 이후 인구절벽을 예상하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인구절벽은 사회 문제를 넘어 기업의 인재 전략과 성장 모델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구조적 충격이다.
· 불평등 확대 – 인간 존엄의 격차
세계화와 기술 발전은 ‘경제 성장’이라는 과실을 키웠지만 그 과실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못했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자산·소득 격차가 확대되고 신규 세대 간 갈등 또한 증폭됐다. 경제 성장이 둔화하기 시작하면 사회적 격차는 곧 기회의 불공정과 경험의 격차를 더 크게 만든다. 자산과 소득에 기초해 나타나는 사회 계층의 대물림은 ‘인간 존엄의 격차’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분노와 증오, 우울의 수준은 높아진다. 경제 생산 활력 저하의 차원을 넘어 구성원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는 위험 요인이다.

구조적 불안정성의 방아쇠가 당겨지다
인구 감소와 불평등 확대는 사회 문제 차원을 넘어 국가 경제 활력과 경쟁력을 잠식할 수도 있다. 2020년대 한국 사회에선 이미 이 총이 발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스러운 상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 인구절벽 현실화: 2025년 고령인구는 전체의 20%를 넘어서고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매년 30만 명 이상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구조적 충격이 현실화했다.
· 사회적 활력 약화: 청년층은 주거·고용에서 좌절을 경험하고 중장년층은 불안한 노후와 부채에 시달린다. 사회 전반의 신뢰 자본은 약화되고 계층·세대 갈등은 정치·경제 불안정성을 증폭시킨다.
· 저성장 고착화: 한국은행은 2025년 초 경제 성장률 전망을 1.5%로 전망한 데 이어 5월 말 또다시 0.8%까지 낮췄다. 이는 경기순환이 아니라 구조적 저성장으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이 모든 현상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한국 경제를 피크아웃 위기로 몰아간다.
· 내수 기반 약화: 생산가능인구 감소, 수출 둔화에 더해 저성장·불평등으로 소비 여력이 줄어든다. 이중, 삼중의 압박 속에서 내수 기반이 지속해서 악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 재정 부담 확대: 인구 고령화는 연금·복지 지출을 급격히 늘려 재정 건전성 리스크로 이어진다. 젊은 세대의 근로 의욕 상실 및 인재 해외 유출 또한 초래할 수 있다.
· 혁신 역량 약화: 사회적 활력이 저하되고 인재 유출이 가시화하면 창업, 혁신도 위축된다.
국가와 기업이 고민해야 할 질문
구조적 불안정성 또한 기업 입장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경영 환경이 돼 가고 있다. 기업 경쟁력 보존 관점의 대응 전략은 물론 공동체 일원으로서 해법 모색과 실행에 협력이 필요하다.
· 산업 구조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한국 경제는 노동 투입에 의존한 성장에서 자본 투입 중심의 성장으로 옮겨왔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 생산성은 2023년 기준 시간당 51달러(OECD 38개국 중 33위)에 불과하고 기술 발전도 원천 연구보다는 단기 상업화에 치우쳐 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첨단 기술·서비스 중심의 산업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결실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사회·경제 구조 혁신을 이룰 수 있다.
· 인재 전략을 어떻게 새로 설계할 것인가? 인구절벽은 곧 인재 절벽이다. 따라서 글로벌 인재 유치를 위한 이민 제도 정비와 사회 인프라 확충, 포용성 확대, 인력의 리스킬링&업스킬링(Reskilling & Upskilling), 평생학습 플랫폼 구축은 단순한 HR 과제가 아니다. 기업에는 경영 생존 전략이고 국가에는 경쟁력 강화 전략이다.
· 사회적 신뢰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계층·세대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기업은 포용적 고용, 공정한 임금·기회 구조를 통해 신뢰를 축적해야 하며 국가는 제도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이런 노력은 기업에 있어서는 브랜드 자산이자 리스크 완충 장치, 국가적으로는 사회적 안전망 강화의 핵심 수단이다.
4. 글로벌 대전환의 세번째 축, AI.디지털 혁신
복선,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
AI는 위협일까, 기회일까? 이미 답은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AI를 도입한 기업들은 기존 방식 대비 비용과 시간을 20~30% 줄이면서도 더 많은 산출을 내고 있다. 아직 업무 프로세스 전반을 AI 중심으로 재편하거나 AI로 완전히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닌데 이 정도의 효과가 나온다.
산업혁명이 기계로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확장했다면 AI는 인간의 지적 한계를 확장한다. 따라서 이번 변화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산업혁명과 비견하거나 그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진 구조적 전환이다. 수십 년간 무대 위에 걸려 있던 세 번째 총은 데이터, 컴퓨팅 파워, AI 기술력의 축적이었다. 인터넷 보급, 스마트폰 확산, 클라우드의 대중화, 반도체 성능의 기하급수적 향상은 모두 AI와 디지털 혁신이라는 세 번째 총을 무대 위로 올린 복선이었다.


방아쇠는 생성형 AI의 대중화
포천 500 기업의 99%가 이미 AI를 업무에 도입했다. 미국·유럽의 일부 선도 기업은 전체 IT 예산의 10%까지 생성형 AI에 배정하기 시작했다. 반면 2024년 말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 업체 시스코가 발표한 2024 시스코 AI준비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3%만이 운영 시스템에 AI를 적용할 준비가 돼 있고 대다수는 여전히 파일럿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IT 예산 내 AI 투자 비중도 현저히 낮아 격차는 점점 벌어질 전망이다. 중요한 것은 세 번째 총을 막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집어 들어 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앞선 두 자루의 총(탈세계화·구조적 불안정성)은 우리가 발사 시점이나 여부를 선택할 수 없었다. 말은 배역이 그랬다. 날아오는 총탄을 막아 내거나 피하는 정도의 대응만 가능했다. 그러나 세 번째 총은 다르다. 방아쇠는 아직 완전히 당겨지지 않았다. 대전환의 서막일 뿐 클라이맥스가 오지 않았다. 우리나라, 우리 기업은 무대 위에서 능동적인 배역을 맡아 이 총을 집어 들고 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기업은 지금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더 이상 디지털 전환을 늦출 수 없다. 한국은 AI 도입 논의에 앞서 기반 인프라와 클라우드(특히 SaaS/PaaS) 전환의 선진국 대비 크게 뒤처져 있다. 예컨대 한국 기업의 퍼블릭 클라우드 도입률은 약 25~30% 수준이다. 미국(70% 이상), 유럽(50% 내외)과 비교해 최소 5~7년 이상 격차가 난다. 인프라가 이렇다 보니 업무 방식의 변화 역시 더디다. 지금까지는 낮은 생산성은 숙련도와 근면함으로 메워왔지만 이 방식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생산가능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은 경험 의존적 운영 모델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제조 중심의 한국 기업들은 오랫동안 비용 효율과 품질, 속도, 안정성에 초점을 둔 ‘오퍼레이셔널 엑설런스(Operational Excellence)’를 중심으로 경쟁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내부 최적화에 갇힌 갈라파고스식 혁신은 결국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낳는다. 일본 기업들이 과거 경험한 것처럼 말이다. 글로벌 베스트 프랙티스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그 위에 한국 기업만의 차별적 강점을 얹는 방식으로 운영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AI 도입은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근본적 생산성 혁신을 전제로 한 운영 모델 재설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는 지난 10여 년간 이어진 생산성 둔화를 돌파하고 다가올 노동력 급감과 암묵지 중심 경영의 한계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기회다. AI는 기업 운영 방식을 전면적으로 현대화하는 기폭제가 돼야 한다. 트렌디한 기술을 조직 구성원이 한 번 시험해 보는 수준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 글로벌 선진 기업과의 격차가 더 벌어지기 전에 지금 시작하고, 속도를 내야 한다. 이미 AI 도입과 관련한 질문은 ‘언제 시작할까’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따라잡을 것인가’로 바뀐 지 오래다.
따라서 우리 기업은 지금 다음의 질문에 답을 준비해야 한다.
· 어떤 영역에서 AI를 가장 빠르게 도입할 것인가? (R&D, 생산, 마케팅, 경영 지원 등)
· AI와 기존 강점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제조+AI, 금융+AI, 서비스+AI)
· AI 활용 과정에서 윤리와 신뢰 문제를 어떻게 선제적으로 관리할 것인가? (데이터 보호, 공정성, 투명성)

국가는 어떤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가?
경직된 고용·규제 환경은 기업이 생산성 향상 투자를 주저하게 만든다. 따라서 국가는 원천 기술 기업을 육성하는 동시에 대기업의 AI 투자가 시장을 형성할 수 있도록 제도적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규제 개혁, 특히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지 않고는 기업 투자가 속도를 내기 어렵다. 정부의 또 다른 역할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제도적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AI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하더라도 생산성 향상 과정에서 직업 재배치는 불가피하다. 이때 재교육, 직업 전환 지원, 생계 보장 같은 안전장치를 제공해야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고 그 과실이 시장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 단기 성장을 벗어나 AI·디지털 중심으로 산업·교육·행정 전반을 재설계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원천 기술 부족과 규제 지연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사회적 갈등 조정에 실패한다면 한국은 ‘총자루’를 쥘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코리아 피크아웃이라는 키워드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탈세계화와 구조적 불안정성은 이미 성장률, 무역 지표, 인구구조, 불평등 등 지표로 나타나는 충격으로 발현됐다. 이 두 축은 이미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이다. 그러나 AI와 디지털 혁신은 다르다. 그것은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도구이며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가 남아 있는 전략적 변수다. 날아오는 총탄은 막거나 피해야 하지만 아직 놓여 있는 총은 우리가 먼저 집어 들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위기론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실행 가능한 설계다. 국가 차원에서는 산업 포트폴리오의 재편과 인재 전략, 제도 재설계가 필요하다. 기업 차원에서는 공급망 재편, AI 기반 생산성 혁신 및 운영 모델 재설계, 사회적 신뢰를 자산으로 만드는 전략이 요구된다. 피크아웃은 자연현상이 아니다. 탈세계화와 구조적 불안정성은 맞이해야 할 환경이지만 AI와 디지털 혁신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다. 한국이 피크아웃의 논란을 잠재우고 새로운 성장 곡선을 그려 나가는 일은 예측이 아니라 실행에 달려 있다. 지금의 선택이 곧 한국 경제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