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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만족한다고? 기업의 착각

소비자가 만족한다고? 기업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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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만족한다고? 기업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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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본 고객 지표 중 최고다. 당장 전사적으로 사용하라." 

지난해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GE(제너럴일렉트릭)의 최고 경영진 회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GE 헬스케어 사업부의 NPS(Net Promoter Score: 순추천고객지수) 운영성과를 보고받은 직후 이렇게 말했다. NPS란 어떤 기업이 충성도(로열티) 높은 고객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로, 베인이 2004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처음 소개한 이후, 글로벌 기업들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GE는 현재 NPS를 모든 사업부서의 핵심적인 경영관리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경영사관학교로 불리는 크로톤빌(GE의 사내 연수원)의 차세대 임원 연수과정에서도 이를 심도있게 강의하고 있다. GE 헬스케어 사업부의 최고 품질 책임자(Chief Quality Officer) 피터 맥케이브는 "대성공을 거둔 식스시그마처럼 NPS도 GE에서 대규모로 계속 추진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고객과 기업의 동상이몽 

로열티 높은 고객층을 두텁게 하는 것은 모든 기업의 지상목표다. 미국 렌터카업계 1위인 엔터프라이즈의 CEO 앤디 테일러는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객들이 우리 물건을 한번 더 사게 하고, 친구들에게 우리 물건을 사라고 얘기하게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로열티가 높은 고객들은 여간해서는 다른 회사 제품에 눈길을 주지 않고, 익숙해진 기업의 제품을 반복적으로 재구매한다. 또 자기 혼자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써보니까 정말 좋더라"라며 구전(口傳)효과를 일으키는 최일선 영업사원 역할도 한다. 대기업부터 동네 구멍가게에 이르기까지 '고객이 최고'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단골 고객을 더 많이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바로 고객로열티의 경제학 때문이다. 

경영진은 고객로열티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베인이 최근 전 세계 362개 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5%는 "우리 회사가 고객지향적인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80%의 기업들은 자기 회사가 경쟁사보다 차별화되고 우수한 상품,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한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고객로열티를 높이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의 인식은 기업들과는 천양지차였다. "당신과 거래하는 기업이 경쟁사보다 차별화되고 우수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느냐"는 똑같은 질문에 대해 고객들 중 불과 8%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은 기업들이 '고객만족경영'을 등한시한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기업의 95%가 경영의 최우선 초점을 고객만족에 두고 있다고 답했을 만큼 고객만족경영에 힘써왔다. 문제는 그간의 고객만족도 조사가 고객의 속마음에 숨어있는 로열티를 끄집어내는 데 한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고객만족도 조사는 질문 자체가 모호할 뿐 아니라 고객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기업과 거래를 중단한 고객의 60~80%가 직전에 실시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만족한다'거나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 로열티가 낮은 고객도 언제든 '만족한다'고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고객 만족도 조사 결과가 기업의 이익성장 등 성과지표와 별 상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만점에 가까운 고객만족도 결과를 얻었지만 성과는 시장 평균에 못 미치는 기업이 적지 않다. 

■"추천하겠는가"를 물어보라 

만족불만족으로는 접근하기 힘든 고객의 속내를 파악하는 방법은 고객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이 거래하는 기업을 주변 친구나 동료에게 추천하겠느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추천하는 고객이야말로 로열티가 높은 고객이다. 이때 '추천하겠다'는 고객의 비율에서 '추천하지 않겠다'는 고객의 비율을 뺀 것이 순추천고객지수(NPS)다. 

NPS를 계산하려면 먼저 "추천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고객이 0점(전혀 추천할 의사가 없다)부터 10점(반드시 추천하겠다)까지 답하게 한다. 다음으로 9~10점으로 응답한 고객을 추천고객으로, 6 이하로 응답한 고객을 비추천고객으로 분류한 후 두 고객비율의 차이를 구하면 된다. 예컨대 A라는 기업의 NPS가 마이너스이면 추천고객보다 비추천고객이 많다는 의미가 된다. 

NPS는 고객의 실제 행동과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추천고객일수록 비추천고객에 비해 더 많이, 더 자주 구매하며, 높은 지갑 점유율(자신의 총 가용 금액 중 특정 기업에 소비하는 비중)을 보이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열성적으로 추천하고 다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NPS는 기업의 성장성과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미국 기업들의 평균 NPS는 5~10%에 불과했지만, 아멕스이베이델코스트코사우스웨스트항공 등 급성장해온 기업들의 NPS는 50~80%로 월등히 높았다. 특히 지난해 GM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어 월가(街)의 주목을 받은 모터사이클업체 할리데이비슨은 NPS가 80%에 달한다. 

■좋은 이익과 나쁜 이익 

NPS의 또 다른 장점은 '이익의 질(質)'을 판별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익 중에서도 회사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이익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장기적으로 독(毒)이 되는 나쁜 이익도 있다. 나쁜 이익은 비추천고객에게서 발생하는 이익으로, 쉽게 말해 고객과의 관계를 해치면서 창출된 이익으로 정의할 수 있다. 즉, 터무니없이 높은 호텔전화요금, 단골고객보다 신규고객을 우대하는 이동통신요금제도, 어쩔 수 없이 내야 하는 높은 은행 수수료 등이 고객을 화나게 하는 나쁜 이익의 전형적인 사례다. 

나쁜 이익 비중이 높은 기업이 앞으로 건실하게 성장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비추천고객들은 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끼는 고객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구매 금액을 줄이고 경쟁사로 옮겨갈 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해당 회사와 거래하지 말라고 열심히 말하고 다닌다. 따라서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고객에게 약속한 가치를 제공하고, 고객을 기쁘게 하며, 고객이 적극적으로 추천하게 만드는 것, 즉 '좋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NPS는 새로운 성장 전략의 출발점이지, 해결 방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객을 어떻게 추천고객으로 만들지, 이를 통해 어떻게 좋은 이익을 늘려갈 지는 기업들이 조직의 역량을 집중하여 풀어야 하는 과제다. 렌터카 업체 엔터프라이즈의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회사는 후발주자였지만, 업계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던 기간에도 두 자리 수 성장을 지속하여 현재는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장의 비밀은 이 회사가 고객 로열티와 기업 운영을 적극적으로 연계시킨 데 있다. 엔터프라이즈는 고객로열티 측정지표를 전사적으로 도입하고, 그 결과를 임원 및 일선 간부의 성과 평가에 직접 연계했으며, 비추천고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해결 방안도 즉시 제시하도록 했다. 

■한국기업 NPS, 아시아서도 하위권 

한국 기업의 NPS는 어떤 수준일까. 베인이 2004년과 2006년 한국의 금융소비재유통 등 11개 산업 및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몇몇 특징이 발견됐다. 한국 기업들의 NPS는 미국영국호주 등 선진국뿐 아니라 같은 아시아국가들보다 낮았다. 이는 드러내놓고 추천하거나 칭찬하기를 꺼리는 문화적 특성에서 연유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업종에 속한 기업들간에 NPS 우열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때, 한국 고객들도 내심 기업들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2년 만에 한국 기업들의 NPS 순위가 많이 바뀌었는데, 이는 국내에 NPS 강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굳힌 기업이 아직 없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감성에 이끌리는 한국 소비자들의 특성도 발견됐다. 예컨대 고객접촉이 많은 금융서비스업에서 '아는 직원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NPS 차이가 최고 4배를 넘었다. 한국 소비자들은 또 상품관련 접촉보다는 안부 문의와 같은 고객밀착형 접촉에 더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전체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고객지향경영은 아직 초보 단계로 평가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낮은 NPS 수준, 기업 간 차별적 고객전략의 부재, 세분화된 서비스보다는 영업사원의 친절한 태도에 영향받는 고객 등 한국 NPS조사에서 나타난 특징은 역으로 우리 기업들이 성숙한 고객지향경영을 추구함에 있어 극복할 과제이자 새로운 도전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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