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위클리 비즈
'산파 일기'가 주는 경영 시사점
여성의 노동과 경제활동 참여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그러나 근대 이전까지 경제활동과 노동의 세계는 여성과 남성이 분리돼 있었으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산파일기'에 기록된 마서의 일은 남성의 세계와는 다른, 오래된 여성의 경제활동과 노동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몇 가지 흥미로운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마서의 일은 협업 정신에 기반을 둔다. 가족•이웃이라는 1차적 공동체를 근간으로 자매애라고 할 수 있는 평등한 노동 정신이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마서는 양초와 비누를 만들고, 베를 짜고, 끊임없이 바느질을 했다. 도축을 하고, 농사를 짓고, 음식을 만들며, 아이도 돌보았다. 또 산파로서 아기를 받고, 아픈 사람들에게 약을 주고 간호하는 일까지 했다. 마서가 이런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딸, 며느리 외에 이웃 여성들과의 긴밀한 협업 체계 덕분이었다. 이러한 협업 관계는 위계질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체로 수평적이었다. 마서는 경험 많은 산파로서, 또 어머니로서,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리더였으나, 상명하복식의 조직을 기반으로 한 리더는 아니었다.
둘째, 마서를 비롯해 산파일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 노동에 대한 가장 중요한 보상은 일 그 자체였다. 물론 마서는 금전적 보상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마서가 아이를 받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고 밤새워 간호하는 모습에서, 보상보다는 일 자체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실제 마서에게 지위, 권력, 명예 등 상징적 보상은 거의 없었고, 마서 스스로도 그 부분에 대해 개의치 않고 있다.
셋째, 마서는 멀티태스킹의 달인이란 점이다. 그녀의 일은 계획적이고 단선적인 일이 아니라, 동시다발로 발생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부분으로 쪼개서 분업화하기 어려우며, 전체적 일에 대한 큰 책임은 가지고 있으나, 언제 어떻게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상당히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성격의 일이었다. 이런 일을 마서는 아주 유능하게 처리한 멀티태스커였다. 산파로서 출장을 갔을 때,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대기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뜨개질 도구를 사용했으며, 아이를 돌보면서도 누비이불을 만들고 농사일을 했다.
오늘날은 마서의 시대와 비교해 볼 때 많은 변화가 있다. 남성과 여성의 업무 성격과 환경이 유사해졌고, 특히 남녀가 평등한 환경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마서가 보여주는, 여성 경제활동의 원형적 특성은 오늘날 여성 인력의 '최대 잠재력'을 달성하고자 하는 기업 경영자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
그래픽 여성이 일하는 자세 우선 여성 인력을 활용할 때 사내 위계질서에 따른 상사 동료 관계와 별도로 협업 정신에 근거한 친밀한 멘토-멘티 동료 관계를 설정해 주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남녀 모두에게 중요하나, 경험적으로 보면 대체로 여성은 친밀한 가족 같은 관계에서 커뮤니케이션하고 정서적 지지를 받을 때 성과가 더욱 향상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최근 많은 회사가 여성들 간의 네트워킹 기회와 여성만을 위한 일대일 멘토십을 강화하고 체계화하는 추세다. 필자가 근무하는 베인에서는 여성 컨설턴트에게 개인별 멘토를 남성보다 한 명 더 추가로 배정해 주고, 멘토들과 허심탄회하게 일대일 커뮤니케이션 세션을 정기적으로 갖도록 해 최대한 맞춤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다음으로 여성에게는 명예, 지위, 권력 같은 보상 시스템 못지않게 일 그 자체가 훌륭한 보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부분은 남녀 차이만큼이나 개인차가 크게 존재하는 부분이며 지나친 일반화는 어렵지만, 대체로 남성 직원이 명예, 지위, 권력의 상징-가령, 팀원 수, 호칭-에 좀 더 예민한 경향이 있는 반면, 여성은 일 자체가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좀 더 많이 고민한다.
이를 고려할 때 여성의 최대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담당하는 일의 의미를 본인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일을 부분 부분 나누어 맡기기보다는 최대한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end-to-end)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성에게 유연한 근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과제가 불가피한 데다 오랫동안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는 훈련이 돼 있다. 따라서 언제 어떻게 일을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최대한 유연성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제도와 프로세스를 도입해 줄 필요가 있다. 실제로 베인에서는 1년에 2개월 쉬고 10개월 일하는 '10-2' 제도를 도입해 능력 있는 여성 인재 유치와 유지에 큰 효과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