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매일경제=신문섭 아태 하드웨어·반도체·데이터센터 부문 대표]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목격한 것 중 최대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TAM(Total Addressable Market·모든 시장) 확장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3분기 실적발표에서 남긴 이 한마디는 AI 기술이 테크업계와 비즈니스 전반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베인앤드컴퍼니는 AI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가 연평균 40~55% 성장해 2027년에는 7800억달러에서 최대 99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생성형 AI를 기존 제품에 통합하면서 효율성을 제고하고 있으며, 오픈소스 모델과 독점 모델 간 경쟁은 기업들이 맞춤형 솔루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를 기반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AI는 기술 혁신을 넘어 금융, 의료, 제조업, 소비재, 서비스업 등 거의 모든 산업의 경계를 허물며 비즈니스 모델을 재편하고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 그리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글로벌 테크업계에선 'AI 주권'이라는 새로운 키워드가 급부상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국이 데이터 보안, 개인정보 보호, 국가 안보라는 명목을 내세워 자국 중심의 AI 생태계를 구축하며 기술 패권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트렌드를 일컫는다. 반도체 산업에서 시작된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 올 들어 AI와 데이터 생태계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AI 주권은 각국 정부가 데이터 주권과 기술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와 정책 지원을 강화하면서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가 대표적인 사례로, 자국 정부가 지원한 오픈소스 대규모언어모델(LLM)인 팰컨(Falcon)을 개발해 주목을 받는다. 팰컨은 아랍어를 비롯한 다양한 지역 언어와 문화적 맥락에 최적화된 모델로, 글로벌 대기업 제품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 기술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도 정부 역시 인공지능을 국가 경제 성장의 핵심 축으로 삼아 헬스케어와 농업 등 자국 특화 산업에 맞춘 AI 모델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AI 주권의 부상은 테크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AI 개발은 이제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간 경쟁, 데이터 주권, 그리고 지역적 특수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유럽연합(EU)은 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GDPR)과 같은 강력한 규제를 바탕으로 자국 내 데이터를 활용한 AI 개발을 촉진하고 있다. 유럽만의 AI 표준을 수립해 미국이나 중국의 대형 기술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포석이다.
AI 주권은 기술 산업의 탈세계화 속에서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기존 글로벌 기업들은 지역별로 최적 운영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복잡성이 증가하고, 지역 기반 업체들의 경우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 동시에 과거 텔레콤 산업과 유사하게 지역별 과도한 인프라스트럭처 투자로 인한 장기 수익성 하락의 위험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AI는 이제 단순한 기술을 넘어 글로벌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국가 및 기업 전략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