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한국 기업이 해외에 진출한 지 수십 년이 됐다. 하지만 글로벌화는 많은 한국 기업에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특히 개도국 시장 진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같은 개도국이라도 리스크와 소득수준에서 큰 차이가 난다. 베인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경제 성장 기여도가 비슷한 칠레나 베트남은 1인당 소득이 5배, 국가 리스크는 2.5배 이상 차이가 난다.
경쟁 구도도 훨씬 복잡해졌다. 과거처럼 현지 사업은 현지 기업, 글로벌 사업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던 구도가 아니다. 모든 국가에서 개도국의 현지 기업, 다국적 기업, 신규 글로벌 진출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해외진출 방식이 요구되고 있다. 동시에 명확한 성공 공식의 정의가 필요하다. 이를 무시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글로벌 시장 진출의 성공 확률이 현재도 30% 미만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다.
개도국 시장 진출 때 기업들이 범하는 가장 큰 오류는 목표 시장 선정의 오류다. 특히 선도 기업들의 경우 개도국 시장에는 굿-이너프(Good-Enough) 계층이 가장 크다는 점을 간과한다. 이 계층은 제품의 성능, 가격 등이 일정 수준만 넘으면 구매할 용의가 있는 계층이다. 인도의 경우 전체 소비층의 60~80%에 육박한다. 이를 무시할 경우 진출 초기 목표 시장 범위가 너무 좁아 원하는 성과를 올리기 힘들어진다.
미국의 월풀이 개도국 진출 전략으로 ‘World Washer’라는 단일 세탁기 모델을 BRICs와 멕시코에 동시 출시한 적이 있다. 이 제품은 인도의 실크 옷감에는 부적합해 세탁물이 엉키고 찢어지는 문제가 생겼다. 목표고객층도 도시로 설정하면서 상대적인 고가 전략을 고수했다. 이에 반해 LG는 다양한 현지 맞춤형 제품과 가격대로 시장을 공략했다. 예를 들어 난시청 지역이 많은 인도 시장을 감안해 고감도 수신 TV를, 채식주의자가 많다는 사실을 감안해 야채칸을 크게 늘린 냉장고를 출시했다. 이러한 전략 차이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월풀은 5% 미만의 점유율에 그친 반면 LG는 25%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해외진출에 성공적인 기업들을 보면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공통점을 보인다. 우선 인재 확보와 이해관리자 관리에 집중하면서 현지에서 인수합병(M&A)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 인재난(Talent Gap)은 모든 개도국이 넘어야 할 지상 과제다. 브라질의 64%, 중국의 40% 기업들이 적재적소의 인재를 찾는 일이 어렵다고 호소한다. 미국은 14%다. 중국 폴크스바겐이 장기적으로 이를 준비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 기업은 역량 확보와 사회공헌의 두 차원에서 장기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진출은 단순히 해외로 시장을 확장하는 것이 아닌 ‘제2의 창업’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적은 준비 소홀이다. 현지 문화, 기업 관행에 대한 치밀한 사전 연구 없이 “몇 년까지 얼마의 매출 달성”과 같은 밀어붙이기식의 진출 전략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