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
성공한 글로벌 하이테크 기업은 전통적인 전략 수립 방식에 만족하지 않는다.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 당장 1년 뒤면 쓸모없어질지 모를 3~5년 장기 목표를 세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장기 계획을 아예 세우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장기 기획에 민첩성(agility)을 더한다고 보는 게 맞다. 이들 기업은 데이터를 토대로 다양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능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신중한 기획과 민첩한 대응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성공기업 전략 수립의 4가지 핵심 원칙은 이렇다.
첫째, 규모를 중시한다. 규모의 경제적 효익은 첨단기술 산업에서도 중요하다. 단, 기업이 규모를 키우는 방식과 속도가 다르다. 하이테크 기업에서의 규모란 ‘가상적인 형태’인 경우가 많다. 하이테크 산업은 전통적인 산업처럼 엄청난 시간과 자본을 투입하지 않더라도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다.
2008년만 해도 심비안 OS·애플 iOS와 비교해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계는 작은 점 하나에 불과했다. 구글은 애플 아이폰과 경쟁하려는 다수 휴대전화 제조업체와 오픈소스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구글의 오픈소스 정책으로 비용을 절감한 제조사들은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계를 탑재시킨 저렴한 기기를 보급했다. 이를 통해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계 점유율은 2009년 4%에서 지난해 85%로 급등했다. 독점적 혁신성을 잃을까 파트너십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은데, 구글의 역발상은 구글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이끌었다.
둘째, 미래를 기준으로 현재를 준비하는 ‘퓨처 백(future back)’ 전략을 구사한다.
대다수 기업은 현재의 제품과 사업 모델을 토대로 미래 성과를 추정하는 ‘투데이 포워드(today forward)’ 관점을 활용한다. 그러나 역동적인 환경에 적합한 선택을 하려면 퓨처 백 관점이 필요하다. 날것 그대로의 고객 니즈를 이해하고, 현재 운영 형태와 관계없이 미래의 파괴적 혁신 시나리오를 먼저 그려야 한다.
셋째, 자원 배분은 냉정하고 비민주적이어야 한다. 전통적인 기획에서 가장 흔히 나타나는 실패 사례는 점증적 예산 편성(incremental budgeting)이다. 기존 사업부가 목표를 달성하면 해마다 조금씩 예산을 늘리는 방식을 말한다. 하이테크 기업 운영 방식은 달라야 한다. 다양한 자산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 전반에 ‘땅콩 잼을 바르듯(peanut buttering)’ 자원을 균일하게 배분해서는 안 된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희소한 자원을 가장 중요한 영역에 집중 배치해 경쟁업체보다 많은 투자를 감행해야 한다.
넷째, 장기 기획은 ‘발견의 파도(waves of dis covery)’여야 한다. 멈춰 서지 않고 변화에 대응해나가는, 애자일 대응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애자일은 기업이 장기 기획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애자일은 기업이 장기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단기간 빠르게 행동하는 유연성을 키워준다. 향후 기술 변화에 대비해 희소한 자원을 빠르고 정확하게 배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54호 (2020.04.15~04.21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