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기업이 성장하면 조직 규모가 커지죠. 점점 복잡해집니다. 그런데 그 복잡성이 기업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이것을 '성장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고생고생해서 기업을 키워 규모의 경제를 확보 했는데, 오히려 미래를 파멸하는 씨앗이 되는 겁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 이 바로 '창업자 정신'입니다."
크리스 주크(Chris Zook) 베인앤드컴퍼니 글로벌전략 부문 대표는 <이코노미조선>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주크 대표는 과거부터 꾸준히 '복잡성'을 경계 하고 '핵심'을 강조해온 경영전문가다. 이전에 낸 저서 <핵심을 확장하라> <최고의 전략은 무엇인가> 등에서 그는 "차별화된 핵심 사업에 집 중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 내놓은 답 '창업자 정신'은 용어는 다르지만 담고 있는 본질은 큰 차이가 없다. "창업자 정신이란 창업 자가 기업을 설립할 때 핵심으로 삼은 태도와 정신을 말합니다. 이 정신을 유지하는 기업이라 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재능있는 젊은 인재를 유치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창업자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지 아닌지 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징후는 직원들이 기 업 고유의 정체성을 잊기 시작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레고 그룹은 위기가 심화될 때 스스로를 '브랜드 회사'로 여겼습니다. 세계 최고의 교육용 블록 제조업체라는 원래의 정체성을 잊은 것이죠. 이렇게 정체성을 잊기 시작하면, 핵 심 고객층이 누구인지, 어떤 면에서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모두 흔들리게 됩니다. 이런 징후가 나타날 때 그 조직은 실력주의 대신 정치적인 조직이 되곤 합니다. 결과 로 말하는 대신 사람들이 조직 내에서 자신의 평판을 신경쓰고 책임지기를 피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규모가 커진 기업이 효과적으로 창업자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조직 형태는 없을까요.
"성장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위기를 극복하고 창업자 정신을 유지하는 기업들은 몇 가지 특성 이 있습니다. 첫째, 직접 고객과 만나지 않는 백 오피스 직원보다는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을 최 고로 칩니다. 둘째, 가능하면 많은 조직원이 작 게나마 창업자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듭니다. 도미노피자, 맥도널드 같은 프랜차이즈 기업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지만, 어느 기업에서든 적용할 수 있습니다. 중국 가전기업 하이얼은 아이디어를 내는 직원들에게 돈을 주 고 창업하게 했죠. 2년 만에 2만6000명의 직원 을 내보내 200여개 벤처 기업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셋째, 이런 기업에서는 고객과 만나는 현 장 업무와 연관된 팀에 의사결정권과 많은 권한 을 줍니다.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 도요타는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사람이 언제든 문제가 발생 하면 가동을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죠."
일정 규모에 이른 기업들은 신성장동력, 성장 잠 재력이 있는 새 고객을 찾곤 합니다. 핵심 고객 을 지키는 게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물론 장수하는 기업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거나 과거 성장의 밑거름이 됐던 동력을 기반으로 재도약합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은 기업이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 을 시작할 때 마련되기도 하고 아예 핵심 역량 을 다른 지점으로 옮길 때 나타나기도 합니다. 인터넷 서점으로 출발해 여러 제품을 파는 전 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성장한 아마존은 전자에 해당하는 기업이지요. 넷플릭스처럼 DVD 대여 업에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옮겨간 기업 은 후자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주목할 점은 아 예 다른 업종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기업의 기본 사명을 잃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내부의 핵심 역량을 깊이 있게 발전시켜 성장 동력을 찾는 대신, 깊은 생각 없이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해 손쉽게 성장하려는 기업이 훨씬 많습니다. 사업 다각화로 어려움을 겪던 기 업 대부분이 원래의 출발점, 초심으로 돌아가 핵심 사업에 집중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는 예 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창업자 정신이란 창업자가 기업을 설립할 때 핵심으로 삼은 태도와 정신을 말합니다. 이 정신을 유지하는 기업이라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재능있는 젊은 인재를 유치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끝까지 창업자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가 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조직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목표를 설정하려면 우리 회사만의 정체성 을 차별화할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이런 질문을 먼저 던지는 겁니다. '이 세상에 우리 기 업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하는거죠. 그 답은 구글처럼 '전 세계 정보망을 조성한다'는 거대한 목표가 될 수도 있고 식품업체가 '제일 신선 하고 건강한 음식을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울 수도 있겠죠. 중요한 것은 직원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감대를 끌어내고 역량을 키 우는 겁니다."
창업자 정신을 유지하려면 경영권을 전문경영 인보다 가족에게 승계하는 게 좋을까요.
"경영권 승계를 누구에게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경영권을 물려받는 사람이 창업자 정 신을 가졌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이케아, 렌트어카(Rent-a-Car) 같은 기업은 가족 소유 기업 이지만 CEO는 그 기업 출신의 전문경영인입니다. 이 기업들이 창업자 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CEO가 창업자의 비전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기 업의 핵심 역량과 문화 속에 이를 잘 녹여 넣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고도 쉼없이 CEO가 초심을 강요하면 직원들이 지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일부 기업 중에는 일선 직원들의 피로도와 스트레스가 높은 곳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조직의 핵심 직 원들은 회사의 사명에 영감을 받고 더 큰 의욕 을 갖게 됩니다. 회사의 사명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확인하고, 보상받고, 조직 내에서 자신의 의견이 갖는 영향력이 얼마나 커져가는 지를 느끼게 되니까요. 베인앤드컴퍼니도 늘 미 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로 손꼽히는 직장입니다. 우리 직원들은 굉장히 열정적으로 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현장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를 기 울이고 합당한 보상을 한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기업가가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젊은 기업과 그 창업자를 양육하는 능력이야말로 각국이 강력한 경제를 일굴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지금 한국 정책 당국에도 이런 노력이 필요 한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