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테일매거진
유통채널 다변화, 인구통계학적 변화, 소비시장 성숙화 등은 유통뿐 아니라 소비재 기업들에게도 큰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베인앤드컴퍼니 강지철 파트너는 “자사가 영위하고 있는 사업이 수년 후 어떤 환경에 처하게 될지를 정확히 진단하고, 카테고리 상황별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RM 현재 소비재 기업들이 직면한 위기는 무엇인가.
유통환경 변화로 국내 소비재 업계는 지금 격변의 한 가운데에 있다. 소비재 기업들이 직면한 위기의 실체는 카테고리와 사업모델 두 가지 축으로 나눠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카테고리별 경쟁 정도와 성숙도에 따른 리스크, 그리고 유통채널 변화로 인한 사업모델 측면의 리스크, 이 두 가지 리스크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얼마나 동시에 오느냐에 따라 기업의 대응 방향성도 달라진다.
먼저 카테고리 위기 측면에서 보면, 내가 영위하고 있는 사업의 상품군이 성숙시장일수록 리스크가 높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가공식품이나 생활용품이 카테고리 리스크가 높아서 시장 경쟁이 치열하며 갈수록 유통업체 PB로 대체될 확률도 높다. 실제 이런 카테고리에서는 PB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사업모델 리스크는 유통채널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디지털 채널의 급속한 확대, 편의점을 포함한 스몰 포맷의 성장 등 업태 구도에 큰 변화가 오면서 소비재 기업들의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이 부분 역시 카테고리별 차이가 존재한다. 신선식품 카테고리는 여전히 오프라인 유통이 우세한 반면, 기저귀 경우 70% 이상이 디지털 채널로 전환됐는데 이러한 품목이 사업모델 리스크가 높은 것이다.
RM 두 가지 리스크에 대해 카테고리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앞에서 언급한 기저귀 경우 디지털 채널에서의 판매 비중이 높아지면서 사업모델 리스크는 높아졌지만, 고관여 제품인 만큼 아직 PB로의 대체율이 높지 않다. 반면 가공식품 경우 시장 경쟁은 치열하지만, 아직까지 온라인 판매 비중이 높지 않아 사업모델 리스크는 낮은 카테고리다.
문제는 카테고리 리스크와 사업모델 리스크가 동시에 오는 경우다. 미국 면도기 시장이 대표적인 예다. ‘달러쉐이브클럽(Dollar Shave Club)’이라는 혁신기업이 등장하면서 카테고리 리스크와 사업모델 리스크가 동시에 높아졌다. 달러쉐이브는 기존 유명 브랜드보다 50% 이상 낮은 가격에 면도기를 판매해 가격선을 허물었고, 기존 업체들이 시도하지 않은 온라인 정기 배송 서비스를 시도해 사업모델 혁신을 이뤘다. 이전까지 미국 면도기 시장은 독과점에 가까운 카테고리였는데 달러쉐이브가 등장하면서 철옹성 같았던 벽이 무너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 더 많은 카테고리에서 일어날 것이다.
RM 그에 대한 대응은 무엇인가.
우선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각 소비재 기업들은 자사가 영위하고 있는 사업이 어떤 리스크를 안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춰 카테고리 혁신이나 채널 모델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리스크 정도를 판단할 때 그 시점을 현재가 아닌 미래시장 관점에서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변화 속도가 빠른 시기에 현재 시점으로 진단해서 대응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최소 5년, 10년 후 우리 회사 제품의 카테고리 리스크와 사업모델 리스크가 얼마나 높아질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그에 따라 방향성을 결정해야 한다. 만약 이 두 가지 리스크가 동시에 심화되고 있다면 머지않아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사업 전체의 변화까지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
정확한 진단 후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수립해야 하는데 문제는 우리나라 대부분 소비재 기업들이 대부분 멀티 카테고리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분석 단계부터 각 카테고리별 접근이 필요하며, 이는 철저히 고객 인사이트에 기반해야 한다.
RM 구체적인 전략에 대해 설명해달라.
앞에서 말한 대로 카테고리별로 처한 위기 상황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3가지 대응방안이 있다.
첫 번째는 영업관리 체계를 재정비하는 것이다. 갈수록 디지털 채널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의 영업관리 조직은 대형마트나 슈퍼마켓 등 기존 오프라인 업태 위주다.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을 담당하는 키 어카운트 매니저(Key account manager)는 있지만, 온라인 채널 담당은 따로 두지 않은 경우가 많고, 두고 있더라도 대부분 조직 내부에서 포지션이 높지 않다.
채널의 구도변화와 맞물려 이제 기존 전통채널 관리에 투입되는 체계와 유사한 수준으로 온라인 채널에 조직과 자원을 분배해야 한다. 또한 오프라인 영업조직과 달리 온라인 조직은 데이터를 분석하는 인력과 기능을 갖춰야 한다. 오프라인의 키 어카운트 매니저가 유통업체와 입점 협상을 하고 매장에서 전개될 프로모션 계획을 협의하듯이 온라인 채널에서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략과 계획을 수행할 역할이 필요하다. 주 고객층의 방문시간, 구매패턴 분석을 바탕으로 자사 상품의 행사 기획을 제안하고, 협의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분석가가 필수다. 실제 미국시장에서는 아마존 키 어카운트 조직을 만들어 그 밑에 데이터 분석가를 두고 유통업체 측과 협업하면서 고객에게 자사 상품을 어떻게 소구하고 팔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짠다.
사실 온라인 채널에서는 오프라인보다 더욱 유연한 프로모션이 가능하다. 오프라인 매장이2주 단위로 행사를 기획한다면 온라인은 매대 재배치나 상품 진열에 소요되는 작업이 필요 없기 때문에 1주, 하루, 시간 단위 전개가 가능하고, 고객별 맞춤제안도 가능하다. 그런데 여전히 소비재 기업들이 기존에 오프라인에서 하던 행사 방식을 거의 그대로 온라인에 적용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영업조직과 함께 마케팅 자원도 재분배해야 한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미디어 소비는 40%가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옮겨왔지만, 시장이 이동하고 있는 것에 비해 마케팅 광고 예산 책정은 아직 과거 관행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 소비재 기업들의 광고 마케팅 예산을 분석해보면 디지털 채널 영역의 예산이 전체 11% 수준이다.
두 번째가 머천다이징 혁신이다. 이는 굉장히 어려운 과제이지만, 성공할 경우에는 기업의 가장 강력한 돌파구가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캡슐커피다. 커피는 오랜기간 인스턴트 커피가 장악해 온 시장인 만큼 리스크가 높았던 카테고리였으나 캡슐커피가 그 벽을 깼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체계를 창조했고, 수익성까지 확보했으며, 현재 대체 불가한 제품이 됐다.
세 번째가 비용구조 재설계다. 카테고리와 유통채널 리스크가 높아진다는 것은 소비재 기업들의 수익성 압박이 더욱 심해진다는 얘기다. 온라인 채널의 확대로 갈수록 가격경쟁은 심화되고, 새로운 유형의 프로모션에 따른 비용 증가분에 대해 유통업체와 소비재 업체가 각각 비용 분담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승자가 되고, 수익성까지 확보하려면 비용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실제 비용구조 개선은 최근 글로벌 소비재 기업들의 주요 화두다.
RM 최근 기업들이 비용절감 노력을 꾸준히 해온 것으로 안다. 더 효과적인 비용구조 개선방안은 무엇인가.
비용절감을 강조하면 대부분 기업들이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안을 들여다보면 단기적인 접근인 경우가 많다.
지속성장이 가능한 비용구조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코스트(cost)’, ‘커넥트(connect)’, ‘윈(win)’이라는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코스트는 말 그대로 비용절감을 의미하는데, 이는 단순히 운영비를 아끼는 차원이 아니라 절감된 비용을 더 중요한 곳에 투자하고 이를 통해 더 큰 성장을 꾀하는 개념이다. 즉 단기 수익을 끌어올리기 위한 절감이 아니라 비전략적인 지출은 없애고, 전략적 비용과 투자는 늘리는 차원의 경쟁력 있는 비용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단, 비용절감 과정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비용절감을 명분으로 고객 경험을 훼손하거나 직원들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이런 방식의 비용절감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없고, 결국 요요현상을 겪게 된다.
고객경험을 훼손하지 않고 임직원의 희생도 없는 원칙을 지키면서 불필요한 비용을 제거하라고 한다면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제로베이스 리디자인(Zerobase redesign)’이라고 한다.
우선 회사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활동들을 평면에 펼쳐 놓는다. 그리고 그 활동들을 하나하나고객관점과 회사 경쟁력 관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를 판단하고 불필요한 활동은 모두 제거한다. 그리고 제거된 활동에 투입되고 있는 인력과 자원을 중요한 활동에 재분배하는 것이다. 이렇게 현재 업무를 고객관점에서 재평가하고 정말 필요한 활동만으로 프로세스를 정리한 뒤 그것을 기초로 조직과 투자 인프라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가면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두 번째 커넥트는 첫 번째 단계에서 절감된 비용을 전략적 사업이나 부분으로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소비재 기업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마케팅 투자와 신규사업 및 신제품 육성을 위한 투자가 필요한데 갈수록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이를 위한 총알이 부족해지는 상황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 절감된 비용을 그 두 가지 요소에 집중해 사용하면 성장동력이 점점 활성화되면서 장기 성장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성장에 탄력을 받게 되면서 마지막 단계인 윈(win)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즉,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비용절감을 이루고, 그렇게 확보된 자원을 전략적인 부분에 집중함으로써 이를 통해 성장과 수익을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게 된다.
RM 온라인 쇼핑몰 개설을 통해 자사 판매채널을 구축하는 소비재 기업이 늘고 있다. 장기적으로 어떻게 전망하는가.
최근 유통업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D2C(direct to costomer), 즉 자사몰을 운영하는 소비재 기업이 늘고 있다. 치열한 가격경쟁으로 인해 갈수록 수익압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직영 온라인 플랫폼 구축을 통해 중간마진을 없애고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면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오프라인 유통채널을 확보하는 것에 비하면 온라인 플랫폼 개설은 상대적으로 비용부담도 적다.
문제는 종합몰이나 마켓플레이스와 비교했을 때 고객이 방문할 만한 차별적 요소를 갖췄느냐는 것이다. 온라인 주요업체들이 수많은 카테고리와 브랜드를 갖추고, 대규모 프로모션을 하며 멤버십 혜택까지 제공하는 상황에서 자사몰로 유인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기존 쇼핑몰과 완전히 차별적인 경험을 제공해서 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을 잘 한 업체가 앞에서 말한 달러쉐이브클럽이다. 달러쉐이브는 가격과 경험 면에서 모두 고객을 만족시키며, 성공적인 D2C 모델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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