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중앙일보=곽재민 기자] “세계 항공산업은 앞으로 2~3년간 극심한 ‘보릿고개’를 경험할 것이다. 글로벌 수준의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하면 한국 항공산업은 경쟁에서 낙오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컨설팅 기업인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아시아·태평양 항공·물류·운송 분야를 총괄하는 앨런 슐트 대표의 말이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29일 슐트 대표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태국 방콕에 있는 그는 “백신 개발 등 긍정적 신호도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진은 꽤 오래갈 것”이라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모두 정부 지원이 줄어들면 살아남는 것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슐트 대표와 일문일답.
Q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추진을 어떻게 보나.
A “항공사 통합은 분명한 장점이 있다. 첫째는 효율적인 비행 일정의 조율이다.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탑승 시간대와 도시 간 연결 항공편이 늘어난다. 에어프랑스와 KLM(네덜란드)의 합병 사례를 보자. 두 회사는 수요가 적은 노선의 비행편을 줄였다. 덕분에 기항이 어려웠던 도시에 새로 진출할 수 있었다. 둘째는 비용 절감이다. 항공사 규모가 커지면 항공기나 엔진 제조업체와의 협상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지난 15년 사이 항공사 통합은 모두 성공을 거뒀다.”
Q 통합으로 인한 시너지가 있을까.
A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취항하는 노선 중 20%가 공급 초과 상태라고 본다. 이런 노선의 항공기와 항공편을 재편성한 뒤 새로운 기항지를 추가한다고 생각해 보자. 항공사는 매출을 늘리고 고객은 편리한 직항편을 이용할 수 있다. 우리 분석에 따르면 통합을 이룬 항공사는 매출이 늘어 이전보다 높은 투자자본수익률(ROI)을 달성했다.”
Q 통합으로 가격이 오를 우려는 없나.
A “항공업은 글로벌 경쟁이 가장 치열한 업종의 하나다. 한국의 국내선을 보면 저비용 항공사가 다수 존재한다. 국제선에선 거의 모든 항로에 외국 항공사가 취항하고 있다. 최근엔 외국 항공사가 공격적으로 한국과 연결한 장거리 운항을 늘리고 있다. 대한·아시아나항공의 독점 운항 노선이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은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인구가 적은 편이다. 매우 불리한 경쟁 상황이란 의미다.”
Q 한국 항공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말인가.
A “한국은 오랫동안 북미와 중국·동남아를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했다. 한국의 항공 운임은 낮고 화물 용적량은 많다. 출입국이나 관세 부과 절차도 복잡하지 않다. 이런 점이 한국 항공사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경쟁 우위가 축소하고 있다. 글로벌 항공업계에선 규모가 경쟁력의 제1 지표이기 때문이다.”
Q 중국이나 일본은 어떤가.
A “중국과 일본의 항공사는 규모의 경제로 인한 비용 우위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중국·일본의 주요 항공사는 대부분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보다 규모가 크다. 전일본공수(ANA)는 지난해 기준으로 대한·아시아나항공을 합친 것보다 많은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Q 코로나19의 충격은 언제까지 갈까.
A “국내선은 2021년 후반, 아시아 주변국 간 여행은 2023년에 회복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유럽행 장거리 여행은 2024년은 돼야 가능할 것이다. 다만 효과적인 백신이 나와 경제 회복 속도가 빨라지는 시나리오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면 항공 수요가 회복하는 시점이 6~18개월 앞당겨질 수 있다. 불확실한 점이 많기 때문에 항공사 입장에선 보수적인 관점에서 대응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Q 글로벌 항공시장은 어떻게 변할까.
A “힘 있는 항공사는 더 강해지고 어려움을 겪던 항공사는 더 큰 어려움에 부닥칠 것이다. 지난 20년간 글로벌 항공산업의 주요 트렌드는 통합이었다. 아시아에선 엄격한 규제 등으로 인해 미국·유럽보다 통합 속도가 느리다. 결국 시간의 문제다. 코로나19 여파로 아시아에서도 통합의 물결이 빠르게 닥칠 것이다.”